(9)당당한 다문화가족 영어강사 - 대만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장문경씨

▲ 대만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당당한 한국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는 장경문씨.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가족과 친구도 없는 낯선 이국땅에서 외로움에 눈물 짓던 젊은 새댁은 어느새 여섯살 짖궂은 남자아이를 키우는 대한민국의 억센 아줌마가 됐다. 시장에서 반찬조차 고르지 못하고 서성이던 쑥스럼 많던 대만 여성은 어느새 김치찌개를 자신있게 내놓는 한국 며느리가 됐다. 의료공부를 하며 꿈을 키우던 꿈많은 학생은 한국에서 같은 처지의 결혼이주여성과 뒤늦은 영어공부에 나선 지역 주민을 위한 영어강사가 됐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장경문(36)씨의 이야기다. 올해 발표된 지난해 기준 대한민국 다문화가구는 27만8036가구. 결혼이민자 및 귀화자는 30만4516명으로 추정된다.

과거보다 많이 변화되긴 했지만 장씨와 같은 다문화가족들이 겪는 문화적 차이와 외로움,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호주 유학중 한국인 남편과 첫만남

지난 2009년 결혼, 울산에 자리잡아

차별·외로움 딛고 통·번역가 꿈꿔

“한국서 의료관련 전공도 살리고파”

장씨 또한 쉽지 않은 한국 적응기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과 새로운 땅에서 얻은 축복같은 자녀,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어 지금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가족들에게 힘을 보태려는 꿈을 꾸게 됐다.

지난 2일 울산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3주전부터 시작한 영어수업 준비에 장경문씨는 여전히 긴장했다.

“사실 (강사를) 자신있어 하게 된 것은 아니예요. 주변에 다문화가족 엄마 중에서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를 물어보는데 어떻게 답해야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영어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거예요.”

겸손하게 말했지만 장씨는 대만에서 의료공부를 하다 대학원 공부를 위해 호주 유학까지 간 재원이었다. 그러던 그는 유학 도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독신주의자였던 그였지만 남편과의 연애는 3년이나 이어졌다.

“제가 뉴질랜드로 가면서 남편과 2년 정도는 만나지도 못하고 통화로만 연애를 했어요. 이후에 남편이 프로포즈를 했는데 ‘다시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만 봐준 사람인데…’라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했어요.”

그렇게 지난 2009년 그는 경상남도 창원이 고향인 남편과 결혼했고, 울산에 자리잡았다.

연애처럼 그의 결혼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다문화가족 중 특히 결혼이민자들이 겪는 외로움과 문화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반찬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이름도 모르고 뭔지도 몰라 서성거렸어요. 곧장 ‘뭘 쳐다만 보느냐. 안 살거면 가라’고 하더라구요. 맵고 짠 음식 적응도 힘들었어요.”

결혼과 함께 아들 지호를 낳았지만 외로움 탓에 우울증도 상당했다. 그때 당시 다니던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많은 도움이 됐다. 센터에서 지원하는 다문화가족 프로그램을 찾아 들었고, 비슷한 처지의 다문화가족들과 외로움을 견뎠다.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각 나라의 문화를 설명해주는 다문화강사 활동도 그가 잊었던 공부에 대한 꿈을 다시 꾸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제는 다문화강사와 함께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2016년 평생교육 거점기관 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여행언어배우기-지역주민과 함께 떠나는 플러스 행복여행’ 영어강사가 됐다.

서툰 한국어를 더 갈고 닦아 중국어와 영어권 통·번역가까지 꿈꾸게 됐다. 그의 최종 목표는 학생시절 배웠던 의료공부를 한국에서도 이어가는 것이다.

“아이에게 언제나 당당히 모국어(중국어)를 사용하고, 어딜가서도 한국에 시집왔다고 말해요. 다문화가족이라고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필요하구요. 아직 배워야할 것도 많고 서툴지만 당당하게 재밌게 다문화가족을 자랑스러워하며 살거예요.”

김준호기자 kjh1007@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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