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은하수’자녀를 둔 많은 부모가
엄친아 갈망하며 모든 걸 쏟아붓지만
자식의 입시성적이 부모성적표는 아냐

▲ 김용호 영산대 창조문화대학 학장 방송연예학부 연기뮤지컬 전공

수능시험이 코 앞이다. 지인 중에 서울의 명문 의대에 진학한 ‘엄친아’ 아들을 둔 분이 있다. 그분은 신경도 별로 못써줬는데 아들이 알아서 명문 의대에 척 들어가줬다고 말한다. 동석자들은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는 억장이 무너진다. 다들 부모가 뼈빠지게 뒷바라지해준 것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평범한 ‘은하수’ 자녀가 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 동료 교수와 한담을 나누던 중 아연실색했다. 동료 교수가 헌신적인 자식 뒷바라지로 부러움을 샀던 한 여고 동창생의 이야기를 하는데 무심히 듣다보니 머릿속 퍼즐이 바로 지인의 부인으로 딱 맞춰졌다.

동료 교수가 그 동창친구 집에 놀러갔었단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마침 집에 있던 그 엄친아 아들이 불쑥 등장했단다. 잔뜩 짜증이 난 아들이 신경질을 내는데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자기 엄마에게 거침없이 하더란다. 처음에는 그 모습에 혼비백산했는데 더 놀랐던 것은 그런 아들에게 고양이 앞 쥐처럼 쩔쩔매는 친구의 모습이었단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쇼윈도가족’의 실체는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자식의 ‘입시 성적표’가 곧 ‘부모 성적표’가 되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자식의 성공에 대한 집착을 끝끝내 버리지 못했던 비극적 아버지,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이 가슴아프게 떠올랐다.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 미국의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창작한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은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소시민 윌리 로먼이다. 35년 동안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실적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치고, 월 할부금을 갚기 위해 아둥바둥 살았던 윌리 로먼은 현대인의 고단한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윌리 로먼에게는 비프와 해피 두 아들이 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늘 성공한 삶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던 윌리는 아들이 그 꿈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큰 아들 비프는 촉망받는 고교 풋볼선수인데 장학생으로 대학입학이 예정되어 있어서 윌리의 자랑거리다. 비프의 성공을 굳게 믿는 윌리는 비프가 라커룸에서 축구공을 훔쳐오거나 무면허 운전을 해도 대범하고 개성과 용기가 있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비프는 실상 열심히 공부할 의지도 끈기도 없는 게으름뱅이다. 비프의 친구 버나드는 비프가 공부를 안하면 낙제해서 졸업하지 못할 거라고 윌리에게 경고하지만 윌리는 무시한다. 결국 시험에 낙제한 비프는 출장간 윌리를 찾아가지만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아버지의 위선에 실망한 비프는 집을 떠난다. 비프는 떠돌이생활을 하며 도둑질도 하고 감옥살이도 하며 목적없는 삶을 산다.

어느덧 34세가 된 비프는 여전히 직장도 없이 떠돌아다니다 오랫만에 집에 들른다. 윌리는 비프에게 “너는 좋은 아이란다. 너는 굉장한 사람이 될 거다”며 여전히 아들의 성공에 집착한다. 이런 아버지에게 비프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윌리도 힘든 지방 출장을 그만두고 뉴욕 본사 근무를 요구하겠다며 핑크빛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다음날 모든 희망들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윌리의 요구는 묵살되고 35년간 일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비프는 사업자금을 빌리러 과거의 상사를 찾아가지만 그가 전혀 비프를 기억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다.

비프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은 시간당 겨우 1달러밖에 못받는 하찮은 인간이라며, 윌리에게 “그 허황된 꿈을 불태워버리세요”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윌리는 여전히 “넌 훌륭한 놈이 될거야”라고 말하며 마지막 남은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비프의 사업자금으로 남겨주기 위해 자동차 사고를 위장해 자살한다. 그가 자살한 날은 25년 동안 매달 꼬박 부었던 모든 할부금을 다 갚고 드디어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가지게 되는 날이었다.

고달픈 아버지 윌리의 허망한 꿈은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한국의 아버지와 닮아있다. 은하수를 엄친아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열혈부모가 넘쳐나는 우리 사회에서 ‘불효자방지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부모노릇하기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김용호 영산대 창조문화대학 학장 방송연예학부 연기뮤지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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