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구입한 책에서 만난 ‘트럼프’
갑부서 정치우상으로 각광받게 된 건
국민요구를 거래의 예술로 승화시킨 덕

▲ 성인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국내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시국이 어지러운데,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진행되었다. 연구실 모니터에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이 속속 안내되었다.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주위 사람들도 우리나라가 북핵을 포함한 국제 관계에서 더 어려운 입장에 서지 않을까 걱정들이 앞선다고 한다.

고개를 돌려 책장을 보다 책 <트럼프>(김영사)가 눈에 띄었다. 트럼프가 1987년 책을 썼고, 1988년에 번역을 했으니, 벌써 30년이나 된 책이다. 당시 한국건축가협회 해외건축기행시 뉴욕 트럼프 빌딩을 방문하여 구경을 한 뒤 귀국해서 산 책이다. 그때 외부 현관 주위와 로비 내부에 금빛 금속을 입힌 트럼프 빌딩을 구경했던 기억이 났다.

그 책은 트럼프가 정치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의 이력을 근거로 쓴 책이다. 부제 ‘아메리카의 꿈, 재계의 새 우상’으로 번역된 책은, 원어 부제가 ‘거래의 기술(the Art of Deal)’이다. 속지에 당시 미국 언론계는 “트럼프는 정치지도자의 전형으로서 아메리카의 꿈을 다시 실현할 새로운 스타일의 인물이다. 누구보다도 빨리 상류사회의 귀족이 된 그는 새로운 정치적 우상을 열망하는 미국인들의 소망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민주당 지도자들은 주저 없이 트럼프를 원하고 있으며, 공화당에서도 역시 차기리더로서 트럼프를 꼽고 있다”고 평했다. 30년 전에 책 선전문구가 이런 정도였다면, 언론에서 일찍 재능을 알아 본 것인데 현실에서는 30년이 걸렸으니 늦은 편이다.

트럼프는 1988년, 2004년, 2012년 대통령 선거에, 2006년과 2014년에는 뉴욕 주지사 선거에 뛰어들려 했으나, 선거과정에 합류하지 못했다. 1988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후보자로 고려되었을 뿐이었다. 1999년에 개혁당의 2000년 대통령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했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겨 갔다가 공화당으로 돌아와 계속 문을 두드려 결국 대통령 후보에 나섰고 대통령이 되었다.

옛 책에 보면 트럼프의 ‘나의 사업스타일­11가지 원칙’이 드러나 있다. 1. 크게 생각하라. 2.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다. 3. 선택의 폭을 최대로 넓혀라. 4. 시장 감각을 키워라. 5. 지렛대를 사용하라. 6. 위치에 따른 전략을 강화하라. 7. 언론을 이용하라. 8.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9.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 10. 희망은 크게, 비용은 적당히. 11. 사업은 재미있는 게임 등이다.

‘신출내기 뉴욕 갑부’였던 트럼프가 정치적 우상으로 각광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다닐 때 친구들은 신문 만화나 스포츠 기사를 읽을 때, 미연방 주택관리국의 저당권 상실명단을 살피곤 했던 트럼프는, “돈 때문에 거래하는 것이 아니다. 거래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중산층이 감소하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한 상황에, 복지증진 등 진보적인 공약이 지지를 받게 된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미국 공화당 주류에 대항하여, 트럼프의 약진은 실현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약진은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내용’ 때문이었다.

소수파나 약자인 인종·성 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없는 언동이나 진보적 정치관을 ‘정치적 공정(Political Correctness)’이라 한다. 이 정치적 허용선(PC)에 대해 트럼프가 비판을 가하면서, 긍정적인 선을 넘어 심하다고 생각하던 백인 남성들이 큰 폭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이민자, 스페인계, 무슬림 등을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에 불만스럽던 백인 남성들이 표로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국민과의 소통을 ‘거래의 기술’로서가 아니라, 비록 노이즈 마케팅으로 요란스레 언론을 이용했지만, ‘거래의 예술’로 승화시켜, 정치에 싫증낸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끊임없이 환상을 심어 준 것이 대통령 선거에 성공한 이유일 것 같다.

이제 트럼프가 고객에게 하듯 미국민에게 최고의 정치를 선물하기 위해 할 일은, 미국 우선과 타국 차선 및 적절한 비용 부담을 원칙으로 하는 정치일 것이다. 우리는 냉정한 세계 정치 질서를 보게 될 것이다.

성인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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