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외팔로 농사지어 어려운 이웃돕는 임진용씨

▲ 임진용씨가 주변 펜션과 길거리 등에서 수거한 1만개 가량의 공병을 정리하고 있다. 수거한 공병은 불우이웃돕기용으로 조만간 울산 북구청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울산 북구 당사동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임진용(61)씨는 한 쪽 팔이 없는 장애인이다. 초등학교 때 감전사고로 한 쪽 팔을 잃었다. 오른쪽 발가락도 없고 오른쪽 다리도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 외팔이에 다리도 불편하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도 농사를 지어 10년 넘게 양로원 등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9일 북구 당사동 자신의 집 앞에서 만난 임씨는 겨울 양파 농사를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강동구장 인근 텃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작물을 키우는 게 그의 주요 일과다. 봄에는 호박을, 겨울에는 양파를 심어 그해 여름과 이듬해 초여름에 수확해 판다. 호박과 양파 외에도 생강과 배추 등 각종 농작물들을 수시로 재배한다.

이렇게 농사를 지어 해마다 울산양로원 등 복지시설과 동주민센터 등에 갖다 준다. 그저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해서다. 얼마전에도 직접 키워 수확한 생강 10포대를 동주민센터에 기부했다. 농작물뿐 아니라 지금껏 주변 펜션이나 길거리에서 수거해 모은 1만개 가량의 공병도 조만간 북구청에 무상으로 기증할 예정이다.

어릴 때 감전사고로 한쪽 팔 잃었지만
호박·양파 등 각종 농작물 직접 수확해
10년 넘도록 양로원·복지시설 등에 기부
2011년에는 친절시민봉사상도 수상

충남 태안이 고향인 임씨는 42년 전인 19세때 울산에 왔다. 비록 한쪽 팔은 잃었으나 손재주가 남달라 조각가를 꿈꿨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아 접어야 했다. 대신 특기를 살려 오락기와 노래방기기 등을 수리하며 열심히 살았다. 또 만화가게 총판일과 대기업 야간경비업무, 인테리어사업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결혼도 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2003년께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혼하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다. 한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했으나 다행히 그의 동생이 발견해 가까스로 살아났다.

2003년께 그는 모든 것을 툴툴 털어버리고 지금의 당사동으로 왔다. 당사동에 이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생면부지의 20대 여성에게 자신의 한 쪽 신장을 기증했다. 자살에 실패한 뒤 새로 태어난 삶에 감사의 뜻으로 선뜻 신장을 기증한 것이다. 그 여성은 이제 임씨의 딸 같은 존재가 되어 해마다 수시로 임씨를 찾아와 농삿일을 거들며 친딸 이상의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이 때부터 당사동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한 농작물을 복지시설에 해마다 기부해오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농삿일도 돕고, 집수리와 힘든 일 등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자신의 일처럼 돕는다.

임씨의 이러한 선행은 본보의 보도(본보 2011년 11월30일자)로 알려졌고, 이후 그는 각종 공중파 방송과 여러 언론매체에 잇따라 출연하며 이 지역뿐 아니라 울산의 유명 인사가 됐다. 그를 돕겠다는 단체나 사람들도 하나 둘 늘었다. 2011년에는 바르게살기운동 울산시협의회로부터 친절시민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일상과 삶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다. 나눔을 실천하는 그의 삶은 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임씨는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솔직히 힘은 더 드는게 사실”이라면서도 “매년 저를 기다리는 양로원의 어르신들을 생각해서라도 힘 닿는데까지 계속해야지요”라고 특유의 주름진 미소를 지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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