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희 일산초등학교 교사

교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학습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형제·자매의 수가 적은데다 놀이시간마저 부족한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예전에 가정에서 형제·자매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익혔던 사회성을 기르는 공간이 바로 교실이다. 그런 교실에서 한 학년의 대부분을 함께 지냈으니 아이들의 관계도 그 시간만큼 깊어짐을 느낀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크게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점심시간으로 구분된다. 그 중 아이들의 또래관계가 활발하게 드러나는 시간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다. 교실 앞뒤에 모여서 노는 아이들의 무리를 관찰하고 혼자 있는 아이는 없는지 살핀다. 매일 똑같은 하루인 것 같아도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무리를 살펴보면 아이들의 또래관계가 참으로 유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단짝이었던 친구와 헤어지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놀이 무리가 재편성되기도 한다. 작은 사회인 것 같아도 그 속에서 속상해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아이들에게는 또래관계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의 생활지도에 있어서 또래관계망 살펴보기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소소하게는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를 살펴보는 척도가 되기도 하고 크게는 또래따돌림의 양상을 먼저 파악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 수업시간에 하는 방법 중 마인드맵이 있다. 가을에 대한 마인드맵이면 가운데 동그란 원을 그리고 가을이라고 쓴 다음 낙엽, 가을소풍 등 연상되는 낱말이나 이미지들을 그물처럼 이어서 써 나가는 방법이다. 마인드맵과 비슷하게 교실에서 아이들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하는 방법으로 또래관계망 그리기가 있다. 한가운데 내 이름을 쓰고 친한 친구, 떠오르는 친구 이름 등을 짧은 시간 안에 그물망으로 나타내어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린 또래관계망을 살펴보면 한 아이를 중심으로 한 또래관계부터 학급 내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까지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된다.

얼마 전 주말 저녁에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아직 집에 오지 않고 있는데, 자주 같이 노는 친구임에도 그 친구의 이름을 모르겠다고 했다. 일단 학부모의 전화를 끊고 그 아이 중심으로 한 다른 친구들의 집에 전화를 하는 사이에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무리가 됐지만 아쉬움이 남는 통화였다. 학부모 대상 연수를 할 때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자녀의 학년, 반, 번호를 아는가요?” 생각보다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번호를 모른다. “자녀와 친한 친구 이름 5명을 써 보세요.” 역시 어려워한다. 아이의 또래관계망 살펴보기가 잘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래관계망 살펴보기는 부모들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 학교에서 생활은 잘 하는지, 어떤 성향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를 아는 것은 아이를 알아감에 있어 중요하다. 아이가 평소 많이 얘기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요즘 누구와 같이 다니는지, 같이 점심을 먹는지 등 살며시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길 가에 쌓이는 낙엽만큼 아이들의 또래관계도 깊이 살펴보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박수희 일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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