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공공근로로 전락한 조선업 일자리 사업

▲ 경상일보 자료사진

경영 위기에 처한 국내 조선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각종 대책이 ‘빛 좋은 개살구’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한시적 일자리 창출, 고용유지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서는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수백억원의 조선업 지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겉돌고 있는 정부 대책의 문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기사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경력 활용할 분야 전무
한시적 고용이라 불안정
한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
일용직 찾는게 더 나아
생색내기에 실직자 분통

 

 

‘불법 주정차 계도’ ‘불법 광고물 정비’ ‘공원·도로변 환경정비’ ‘주차관리’ ‘관광지 벽화 그리기’ ‘야시장 운영관리’ 등. 누가봐도 공공근로 성격의 일자리지만 실질적으로는 울산지역 조선업 실직자 등을 위해 만들어진 한시적 일자리다.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조선업 밀집지역 일자리 창출사업’이 정작 당사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조선업 숙련공들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는 사실상 전무한데다 낮은 임금의 한시적 일자리다보니 실직자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 실직자 등을 위한 수십, 수백억원대 예산이 정작 이들을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울산시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울산시와 지역 5개 구·군이 진행하는 조선업 밀집지역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은 총 89개다. 정부가 지난 6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나온 지원책 중 하나로, 16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교육훈련을 시킨다는 취지다. 총 예산은 52억2300만원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7대3의 비율로 사업비를 부담한다.

조선업 일자리 사업은 포괄적으로는 일정 기준에 부합하는 지역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최우선적으로는 조선업 실직자 또는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최우선 대상인 조선업 실직자 또는 퇴직자들은 이 사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직자들의 경력을 살릴 일자리가 거의 없는데다 하루 일당으로 적게는 10여만원, 많게는 수십만원을 받던 실직자들이 거의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 한시적인 일자리 사업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울산시는 태화강 십리대숲 관리 및 유해식물 퇴치사업 등 9개 사업을, 중구청은 태풍 차바 피해복구 지원사업 등 11개 사업을, 남구청은 전통시장 전수조사 등 20개 사업을 각각 진행한다. 동구청은 공원 관리사업 등 16개 사업을, 북구청은 청정환경 북구 조성 등 14개 사업을, 울주군은 깨끗한 농촌 들녘 만들기 등 19개 사업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지역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실직자 상당수가 도장, 용접 등의 숙련공들인데 거의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 단순 노동의 한시적 일자리에 참여하겠냐”고 반문하며 “지자체에서 갑작스럽게 실직자들의 경력을 활용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용부에서 무조건 조선업 밀집지역 일자리 창출사업 공모 신청을 하라고 해서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저소득층이 참여하는 공공근로이고, 참여자 중 조선업 실직자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의 한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실직한 이모(54)씨는 “시급 6030원을 받으며 한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에 불과하다. 차라리 매일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일용직을 찾는게 훨씬 효율적이다”며 “조선업 실직자를 위한 사업이라고 하지만 실직자들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색내기용 사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조선업 밀집지역 일자리 창출사업의 주관 기관인 고용노동부는 울산과 부산, 경남, 전남지역 조선업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년 2월 말까지 총 369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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