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진 울산시민연대 시민참여팀장

여기 국민건강보험료 115만원을 납부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영희(가명)에게 부과된 체납 보험료다. 영희는 부모의 학대로 인해 그룹홈에서 지내는 아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부모의 체납 보험료 독촉장을 영희에게 19차례 보냈다. 열살 아이에게 독촉장을 보내며 ‘건보료는 법에 의해 면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시했다. 더 가관인 것은 주민등록 상 ‘단독세대’라는 이유로 월 보험료 1만100원을 영희에게 별도로 청구했다는 사실이다. 영희는 학대한 부모의 연체 보험료와 자신에게 부과된 보험료를 모두 납부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법은 정부라는 조직을 이용해서 학대받은 아이를 또 다시 학대하고 있었다.

이는 영희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섯 살 아이에게 아버지가 체납한 보험료 4만원을 부과한 사례, 세월호 사고로 부모를 잃은 일곱 살과 아홉 살 아이들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는 사례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장애 1급을 판정받고 경제활동이 어려워서 파산한 50대 남성, 홀로 살지만 10년 넘게 연락이 두절된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제외된 어르신,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었던 한부모 어머니 등 이유는 다양했다. 그러나 적용되는 법은 같았다. ‘지역가입자의 월별 보험료액은 세대 단위로 산정 한다’는 제69조 제5항과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그 가입자가 속한 세대의 지역가입자 전원이 연대하여 납부한다’는 제77조 제2항이다. 국회도 문제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그러나 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나섰다. 울산도 5개 자치구·군마다 저소득가구의 국민건강보험료를 지원하는 조례가 있다. 그러나 보험료 지원 기준이 1만원 미만 가구로서 턱없이 낮다. 1만원 미만은 월 소득 20만원이 안 되는 가구들이다. 앞에서 밝힌 영희의 보험료는 1만100원이다. 이 조례를 통해 지원할 수 없다. 동구의 경우 김종훈 국회의원이 구청장이던 시절에 ‘건강을 생각하는 울산연대(울산건강연대)’와 협의해서 보험료 기준을 1만5000원 미만으로 상향했다. 이렇게 해서 지원되는 예산 총액이 4800만원이었다(2015년). 한편 동구에서 개최한 조선해양축제 불꽃놀이 예산은 5500만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았다. 지원대상이 노인과 장애인, 한부모 가구 등으로 한정돼 있어서 저소득가구임에도 복지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자체가 사람을 선택해서 차별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최근 동구의회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울산건강연대의 청원을 받아 여야 의원 3인이 공동으로 개정안을 발의하고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지원대상을 ‘1만원 미만 전체 세대로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추정되는 추가 예산은 3100만원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이를 막고 나섰다. 정부와 협의 없이 복지 제도를 변경했기 때문에 패널티를 적용해서 동구청에 지급될 교부금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동구청은 조례를 폐기해 달라고 재의했고 현재 의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발의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시행했다. 그녀가 하야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이승진 울산시민연대 시민참여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