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 엄계옥 시인

이번 노벨문학상은 포크의 전설, 미국 싱어송라이터인 밥 딜런에게로 돌아갔다. 대중음악 가사에 시적 표현이 가장 잘 녹아 있어서다. 또 다른 의미로는 문학의 범주를 다양하게 넓힌다는 뜻도 된다. 소식을 접한 순간 만약 우리나라에서 가수에게 문학상을 준다면 정태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적 표현과 우리말의 시적 운율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티베트에서 고산병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라싸를 빠져 나올 때, 도반이 이어폰으로 들려주던 노래가 봉숭아였다. 하모니카와 기타 선율에 이은 청아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집채만 한 울음이 덮쳐왔다. 그 목소리는 담장 위로 파란별이 돋고, 장독대 옆에는 봉숭아가, 징검다리 곁에는 물장구가 있는 태초의 무섬으로 마음을 데려다 놓고 있었다. 오르페우스 시대 시와 노래가 하나였듯, 시가 음악이 신의 음성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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