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이후 새 시작 위한 개헌은
중앙권력의 수평적 분산으로는 모자라
국민 참여 넓히는 지방분권 서둘러야

▲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전 언론인

고 정주영 회장이 정치를 시작할 무렵 몇몇 언론인들과 같이 한 자리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비상하고, 생각과 주장이 워낙 다양하고, 자기 자식을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별나고 특출난 민족이다. 대통령을 여러 명 두어야 이런 국민의 재주와 열정을 나라발전에 제대로 써 먹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행정구역을 적절한 규모로 재편성한 다음 대통령 한명에게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나눠주고 ‘누가 누가 잘하나’ 식으로 경쟁시키는 한편 지자체 파산제 같은 책임을 확실히 묻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대통령을 여러 명 두는 효과가 날 것이다. 이러면 모든 지역들이 싱가포르 이상으로 발전하고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정 회장의 주장을 요즈음 시국에 비추어 되새겨 보면 지방분권개헌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대통령 탄핵이후를 ‘우리 역사의 낭비시대’로 기록되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평가받게 하려면 개헌을 서둘러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가고 있다. 개헌에 대한 당위성은 세워졌지만 국민적 관심이 뜨겁지 않고 시큰둥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선, 일반 국민들이 볼 때 나라꼴을 세계적으로 창피스럽게 만든 기성 정치권이 개헌을 주도하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국회를 중심으로 거론되는 개헌의 내용들이 국민의 바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초점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국회로 얼마를 나누고 총리에게 얼마를 배분하느냐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국민적 호응은 물론 시대정신의 충족도 미흡하다. 지금 논의 수준으로 개헌이 이뤄지면 얼마 못가서 국민들의 눈에는 같은 정치 무대에서 배우들이 서로 배역을 바꾸는 연극을 보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새 헌법 아래서도 국민의 정치적 욕구나 불만은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방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거의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한국적 상황에서 중앙무대를 개편하는 정도의 개헌에는 감동하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21세기 헌법이 20세기에 만들어진 구형 헌법의 부작용을 수선하는데 머물러서는 새 헌법 역시 얼마못가서 구형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각제의 나라 영국이나 대통령제의 나라 미국도 기존의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갈팡질팡하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에 뒤떨어진 헌법을 고치면서 오래된 남의 것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는 아날로그 전자산업에서 일본에 한참 뒤졌던 한국이 1990년대 아날로그를 과감하게 건너뛰어 첨단 디지털 전자산업에 매진한 결과 오늘날 세계최고의 가전 대국을 꽃피웠던 것과 같은 이치다.

디지털시대 국민정서는 중앙권력의 수평적 분산에 만족하지 않고 지방으로의 해체를 요구한다. 스마트폰 덕분에 100년 전 웬만한 국가가 가진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된 유사 이래 가장 똑똑하고 까탈스런 국민들이다. 이들의 눈에 낙후된 ‘87년 헌법’을 웬만히 고쳐서는 대박나기 힘들다. 디지털시대 국민들은 세금으로 국회의원을 뽑아서 국회를 운영하고 개인의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를 대행시키는 아날로그식 간접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로 여긴다.

‘촛불’에서 보듯이 국민의 직접민주주의 욕구가 더 크게 폭발하기 전에 지방분권 개헌을 서둘러야 한다. 지방분권을 통해서 국민과 동떨어져서 작동해온 중앙집중식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국민의 직접 참여폭을 넓혀주는 동시에 국민이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다.

이동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전 언론인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