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식 (사)직업인성개발원 이사장 본보 14기 독자위원장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노점이나 작은 가게를 차리고 가족을 돌보면서 살고 싶다.” 7조원의 재력을 가진 조폭두목이 사형집행 직전에 남긴 말이다. 요약해 보면 “내 야망이 너무 컸다. 그리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물처럼 그냥 흐르며 살아도 되는 것을, 악 쓰고 소리 지르며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잘난 것만 재지 말고 못난 것도 보듬으면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듯 용서하며 살걸 그랬어, 삶이 잠깐인 것을, 낙락장송 말고도 그저 찔레나무 되어 살아도 좋을 것을, 근처에 도랑물 시냇물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소나무 한 그루가 되면 그만이었을 것을,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살았는지, 젊은 날에 왜 몰랐을꼬?” 지금도 내 세상처럼 설치고 다니는 조폭의 입장에서 보면 그 아픔과 후회를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자고나면 숱한 사건이 터진다. 아포리아(Aporia)다. 해결책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태를 말한다. 위기상태가 되면 어김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하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방관자는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당사자는 상황에 모든 책임을 돌린다.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아포리아시대를 살고 있는 느낌이다.

2014년 7월28일 ‘세월호’ 당시 생존 학생의 법정 증언이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위급한 상황에 대한 지식이 나보다 많으니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실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도움을 준 어른은 없었다. 깨진 창문으로 바닷물이 급격히 차오르자 친구들끼리 도와 탈출할 수 있었다.” 가슴 아픈 증언이다. 이때 정말, 탈출구가 없었을까? 가라앉는 배를 누구보다 먼저 탈출하던 선장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사건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사건이다. 대통령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고 최씨의 개인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시각의 차이는 당리당략의 입장도 있는 것 같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건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국가 위기 사태다. 미국의 대선까지 겹쳐 정말 아포리아다.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군자와 선비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다. ‘불원천(不怨天)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불우인(不尤人) 남 탓하지 마라.’ 선비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외쳤던 인생의 화두다. ‘내 탓이오’ 철학은 남 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는 오늘날의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TV 채널을 선택하는 일도, 점심 식단의 메뉴도 마지막 결정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조직의 의사결정에도 보조와 보좌기관이 있는데 그 결정과 선택에 앞서 보조하고 보좌했던 사람이 앞 다투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나에게 다가온 운명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제 잘못입니다.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모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제가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라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극복하려는 ‘내 탓이오’의 가치인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의 모습을 보고 싶다.

최성식 (사)직업인성개발원 이사장 본보 14기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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