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현옥 강동마을신문편집장

지난 월요일 오후 5시53분. 운전 중 급하게 삐삐 울리는 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경주에서 3.3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긴급재난문자였다.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지 3개월이나 지났음에도 여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말에 본 영화 한편이 생각났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관을 찾았다가, 얼떨결에 보게 된 ‘판도라’. 영화 ‘판도라’는 가장 오래된 원전이 있는 마을 ‘월촌리’를 배경으로 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이 있는 울산의 한 바닷가 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풍경이다. 영화는 ‘원자력은 안전하며, 이중 삼중의 사고 대비 체계가 갖춰져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누군가의 호언장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평온하던 일상은 진도 6.1의 강진과 함께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자신만만하던 이중 삼중의 대비책은 재난 앞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원전의 위험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영화를 그냥 영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지난 2012년에 고리원전 1호기가 약 12분간 전원이 완전히 끊긴 중대한 사실이 있었다. 하지만, 한수원은 한달간 이를 은폐했었고 지역의원의 추궁에 의해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상황의 경중이야 다르겠지만,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내용에는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원전주변에 인구밀도가 높다. 게다가 그 원전조차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활성단층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 이미 국민안전처는 5년 전 지질조사를 통해 고리원전 주변 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연구결과를 알고도 불과 5km밖에 떨어져있지 않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을 허가했다. 우리나라는 지진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인간의 그 오만을 비웃듯 지난 9월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원전에 대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지진에 대한 대비책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은 자연이 주는 재해 앞에서 처참하게 무릎을 꿇은 바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 국민이 지난 9월의 지진을 통해 위험성을 자각했고, 일본의 사례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 또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에겐 타인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기회가 있다.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것인가, 전기를 아껴 쓰는 불편함을 감수할 것인가.

서현옥 강동마을신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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