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민심은 대통령 뿐 아니라
정치권 모두를 불신·탄핵한것
정치의 근본 패러다임 바꿔야

▲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울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모 화백께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동류라 느끼는 쟁이들을 만나면 “이놈 이거, 잡놈이요”하고 주변 지인들을 소개하길 즐긴다. 어찌 잘못 들으면 욕설이나 진배없는 그 말이 우리들에겐 전혀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그 말 속에 담긴 진정한 뜻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재주 많음의 인정’이라는 내포된 뜻을 알기에 오히려 그 말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를 ‘좋은 잡놈’이라는 이름으로 우선 규정해 본다.

이에 비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작금의 상황을 보면 ‘나쁜 잡놈’들이 판치고 있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국민대의를 무시한 채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이때다 싶어 흡사 하이에나 떼처럼 물고 뜯기를 서슴지 않는 여야 정치인들도, 시시콜콜한 것까지 파고드는 언론의 태도도 영 탐탁지가 않다.

법리가 뭐 그리 중요한가. 국민 대다수가 탄핵을 인정한 상황에서 그렇게 그 자리 미련 버리기가 대통령은 어려운가. 하긴 동사무소 공익요원만 돼도 벌써 유세부리기에 익숙한 권력지상주의, 금력지상주의가 뿌리 박힌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절대 권력은 여전히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 역시 그렇다. 과연 국정이 이 꼴 나도록 그들은 방치 혹은 동조한 것은 없었을까 묻고 싶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예가 나온다. 굴뚝 청소하러 두 명이 들어갔는데 한 명은 시커먼 재가 묻었고 다른 한 명은 깨끗한 옷으로 나왔다. 결론은 헛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똑같이 더러워진다는 것이 정답이다.

정치판이라는 더러운 굴뚝 속에서 과연 독야청청 흰 옷 입은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있다면 그는 성인이거나 교묘한 사기꾼일 것이다. 낮에는 타인들의 시선 때문에 흡사 적군 대하듯 등 돌리기를 하지만 밤만 되면 대부분 특정 대학의 선후배 친구 사이인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리그를 즐긴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여야 따로 없음은 이것만이 아니다. 입법기관답게 국민생계나 복지와 관련된 법안은 해를 넘기기 일쑤이지만, 자신들의 세비 인상이나 평생연금 지급법 같은 법안은 소리 소문 없이 너무나 일사천리로, 어떤 다툼도 없이 처리하는 기민함을 보인다. 뿐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복지를 위한 휴양시설 등에는 국민들의 혈세 수백억원을 들이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는 ‘높으신’ 의원들의 국정감사 등에서의 질책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예하기관들의 아부성 예산편성과 집행이 또한 한 몫을 한다. 결국 부정부패의 꼭짓점에 국회의원들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국민의 소리 없는 자발적 민심표출이 극대화된 촛불집회로 만들어진 탄핵정국에서 실제로는 그저 ‘숟가락 얹기’ 밖에 한 것이 없는 그들이 정작 국민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주도권 쟁취를 위한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실제 국민들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구태한 정치권 모두를 불신하고 탄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정치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의미에서 여야 정치인 모두가 기득권은 물론이고 200여가지가 넘는 특권을 완전히 내려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인 패거리 문화도 반드시 청산됐으면 한다. 힘 있는 계파 수장들이 공천제의 악습을 활용해 줄세우기를 못하게 된다면, ‘공천장사’라는 세금 없는 거액을 거둬들이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 정치는 아마 백 년은 앞서갈 것이다.

그래야, ‘나쁜 잡놈’이 아니라 ‘좋은 잡놈’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으며, 똥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인간의 냄새로 세상과 사회를 향기롭게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먹고 살기 바쁘고 힘들어서 촛불집회 한 번 참석하지 못한 수많은 민중들이 손뼉 치지 않겠는가. 그래야, 행복 추구권을 거세당한 국민의 마음에 다소나마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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