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울산의 등대를 찾아서

▲ 등대는 단순히 선박에게 등불을 밝혀주는 차원을 넘어 추억과 낭만, 즐길거리가 가득한 등대해양문화공간이다. 사진은 대왕암공원 절경과 어우러진 울기등대. 울산지방해양수산청 제공

매우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멜로디를 가진 노래 제목 중에 ‘등대지기’가 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등대를 보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대왕암에 근무하다보면 울기등대로 가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관람객들도 보인다.

등대원 가운데 이 노래를 싫어하는 분도 있다는 말을 듣고 왜 그럴까 의아해했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설비의 발달로 도서지역에는 무인등대를 설치하지만 예전엔 등대원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밤중 바다를 비추는 모습이 겉으로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근무자는 뼛속 깊이 외로움이나 책임감과 싸우는 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례로 일제강점기에 등대를 지키며 섬에 살던 일가족이 야반도주한 일도 있었다한다.

▲ 화암추등대

등대는 항로표지의 일종이며, 야간에 등화(燈火)로써 선박의 위치나 항해 위험물을 인식하게 하는 시설물이다. 밤에는 광파(光波) 즉 불빛으로, 안개나 운무가 심한 날은 에어 사이렌이나 전기 혼(horn) 등으로 안전한 항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Pharos)등대라 한다. 지금까지 세계 최대 높이 120m, 최초로 조형물로 만든 등대, 가장 오래된 등대 등의 기록을 가진 불가사의한 등대이다. 기원전(B.C) 280년께 세워져 1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기까지 1500년 동안 세계 등대의 아이콘이었다. 이 등대의 연료는 나무나 목탄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 왕들을 위한 상징적 건축물로 웅장하고 신성하며 경외감을 주는 신성 건축물로 표를 사서 구경하기도 했다는 절대적 존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을 밝혀 길을 인도하는 등대의 역할은 어떤 형태였을까. 기록상으로는 가야(伽倻) 건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로왕의 왕비, 아유타(Ayodhya, 阿踰陀)국에서 오는 허황옥(許黃玉)을 맞이하기 위해 유천간(留天干) 등 9간이 포구에서 들었던 횃불을 최초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한다. 불을 밝혀 길을 인도하는 등대로 보는 것이다. 600년 가야사의 시작은 바로 이 불빛으로 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슬도등대

우리나라 근대 등대는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곳으로 보인다. 일본은 1883년 7월 일본과 맺은 조·일 통상장정에 따라 일제강점기인 1901년께 등대 건설을 강권하였다. 조선이 각 항구를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礁標)를 설치한다는 조항을 들었다. 일본은 그전에 이미 일본인 체신기사 이시바시 아야히코(石橋絢彦)로 하여금 등대설치소를 조사하게 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 등대인 인천 팔미도(八尾島) 등대를 소월미도, 북장자서, 백암등표와 함께 1902년 5월 착공해 1903년 4월 준공했다.

이후 일제는 우리나라 전국에 등대를 건설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즉 우리나라의 등대는 근대화와 열강들의 간섭에 의한 시대적 산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팔미도 등대는 지난 9월 재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보듯, 등화를 밝혀 작전의 성공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큰 역할을 했다. 등대의 역할을 200%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연장선에서 울산에도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며 건설된 등대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동구 대왕암공원에 자리 잡고 있는 울기등대다. 공원 길목은 소나무가 우거진 송림 숲으로 가꾸어져 있다. 대다수가 생육이 빠른 소나무로 이뤄져 있다. 이 또한 일제가 러·일전쟁 중 사용한 시설을 가리기 위해 조성했다는 설이 있다,

대왕암공원에는 두 개의 등대가 있다. 하나는 현재 사용 중인 촛대모양의 울기등대, 다른 하나는 동해안 최초의 등대로 문화재청이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구(舊)울기등대이다. 울산의 두 유인등대 중 한 곳이다.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 중 동해안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등대 건설에 나섰다. 1906년 정식으로 등탑을 설치해 대한제국에 운영권을 넘기며 운용을 시작했다. 이후 소나무들이 빨리 자라 등대를 가리자 1972년 증축했으나 이후 또 가려졌다. 다시 증축하기엔 하중 등의 어려움 때문에 새 등대를 설치하며 구 울기등대는 80여 년간의 항해를 마쳤다.

구 울기등대는 그 형태의 아름다움과 함께 구한말 당시 유럽풍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학적 가치와 역사성을 지닌 문화유산이다. 신 등대는 1987년 불을 밝힐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프리즘 렌즈를 설치했다고 한다. 울기등대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에어 사이렌과 전기 혼(horn)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밤이면 아름다운 등대 불빛으로 선박을 보호하고 방문하는 관람객들에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있다.

대왕암공원을 빠져나와 방어동 ‘꽃바위마을’의 현대중공업 해안사업부 방파제 안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커다란 등대 하나, 화암추(花巖楸)등대다. 설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동양 최대의 등대로서 높이가 거의 44.5m이다. 1983년 1월 최초 점등일로서 택지개발로 인해 1994년 현 위치로 이전했다.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느낌이 든다. 울산항, 울산시가지, 석유화학단지 등 사방이 보여 가슴도 탁 트인다. 방어진 12경 중 제1경인 화암만조(花巖晩潮)에 해당하며 20초당 한번 섬광 한다. 처음에는 유인등대였으나 최근 온라인 시설을 완비한 무인등대로 변모했다. 관람객을 위해 안내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니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대왕암공원에서 화암추등대로 가는 중간쯤에는 ‘슬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돌 사이로 바람이 불면 거문고 소리가 난다며 ‘거문고 슬(瑟)’자를 쓰는 섬이다. 동구 12경 중 슬도명파(瑟島鳴波)로 불리는 곳이다. 그 섬에 우뚝 선 등대 하나가 꽤 멋지게 보인다. 1958년 설치된 슬도 등대이다.

슬도 등대는 무인으로 옛 등탑은 철거하고 광파거리를 늘리고 문양을 넣어 근래에 다시 설치했다. 관광자원화 차원에서 슬도에 다양한 구조물과 쉼터를 설치하고 입구에는 소리체험관과 벽화마을, 찻집을 조성하면서 멋진 등대를 설치했다. 등대에 서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울산 최초의 방파제와 방어진 수협어판장 등으로 향하는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인등대지만 낮엔 멋진 형태로, 밤엔 불빛으로 포구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울산에 또 하나의 유인등대는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에 있다. 우리나라 육지 해안에서 1월1일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곳이다. 지난 7월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 열풍으로 당시 관광객이 10배 가까이 늘면서 핫 플레이스가 된 곳이다. 이곳은 바다에서 보면 긴 작대기처럼 보인다 해서 간절곶(艮絶串)이라 하는데 1920년 건립된 등대가 이곳에 있다.

지금은 항해술의 발달로 등대의 불빛이 없어도 배가 길을 못 찾거나 좌초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등대는 이제 단순히 불을 비추는 역할을 넘어섰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이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며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하나의 여행지다. 기상과 해양 관측을 하는 포괄적인 해양시설물로, 문학, 숙박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같은 맥락에서 전국 각지 등대가 개성 있는 모습으로 다양하게 탈바꿈하고 있다. 통영 한산도엔 거북 모양, 영덕엔 대게 모양, 경주엔 탑 모양, 기장의 한 등대는 출산을 장려하는 젖병 모양 혹은 우주선·로봇 모양, 군산 선유도의 인어모양 등대 등 지역 특색을 잘 나타낸다. 등대 투어만 해도 지역 특색을 알아챌 수 있는 개성만점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희망의 불빛으로 비춰진 적이 있는가’라는 글귀가 있다.

등대 문학상 속에는 깜깜한 어둠속에서 비치는 등대 불빛으로 해서 마음의 안식과 희망을 찾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진 구절이 많다.

컴컴한 밤에 매혹적이고 로맨틱한 등대가 비추는 한 줄기 빛은 항해하는 배들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희망이었듯이 이제는 단순히 불을 밝히는 것에서 넘어 우리에게 추억과 낭만과 즐길 거리가 가득한 아름다운 등대 해양문화공간을 찾아 각자의 방식대로 등대 로드 무비도 찍어보고 새해를 등대 불빛과 함께 맞이함은 어떨까 한다.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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