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발생 가상한 시나리오 구성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매뉴얼 제작
지속적인 보완으로 완성도 높여야

▲ 유화숙 울산대 의류학과 교수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으로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상징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지금 지진에 의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다룬 ‘판도라’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인근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얼마 전에 겪은 경주 지진 때문인지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이 남다르다.

12월27일은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이었다. 2009년 UAE 원전 수출을 계기로 원자력 안전을 고취하고 국내 원자력 분야 종사자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법정 기념일이 있을 만큼 원자력이 국내에서 받는 대접은 특별하다.

경제 발전을 위해 산업화에 매진하던 한국은 1973년에 오일쇼크를 경험했고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대체 동력원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원자력이다.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 에너지원이고 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료공급원이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라 하여 1970년대 초부터 주요 동력원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를 보면서 원자력 발전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 1986년 4월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5년 동안 7000여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70여만명을 치료받게 하였으며, 30년이 지났음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또한 2011년 3월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도 사고가 발생해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으며 이후 현재까지 복구 작업 중이고, 제1원전의 폐로, 배상 등에 필요한 비용이 약 219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원전은 부지, 설계, 건설과정, 운전 측면에서 안전성이 확보돼야 하고, 부지안전성 평가는 환경영향평가와 지반의 지질, 구조, 기상 및 자연현상을 분석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을 생각해보면 부지 안전성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만약 제대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발전소가 지진 발생지와 가까워 안전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원전들이 내진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높은 강도의 지진을 경험한 적이 없어 발전소가 지반의 구조나 지질에 맞게 건설되었는 지에 대해서도 염려스럽다.

이에 대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설비와 지속적인 방사성 폐기물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방사능 방재대책도 수립돼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원자력 발전은 장점에 초점을 맞추어 성장해 왔으며 산업화의 주 동력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해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에서 본 것처럼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를 무시할 수 없으며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자꾸 돌아보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 부터는 원자력 발전이 갖는 단점에도 주목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는 준비태세를 확실히 갖출 필요가 있다.

먼저 제대로 된 재난발생 가상 시나리오를 구성해 보고 이에 따른 대비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보여 주기식의 대비 매뉴얼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비 매뉴얼인지 확인하고, 지속적 보완을 통해 보다 촘촘하게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예측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여야 한다. 실시간 교통정보,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발생할 수 있을 만한 상황들을 만들어보고 정부가 할 일과 국민들의 행동요령 등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작업들은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한다. 변화되는 사회상을 고려하면서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실제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낭비라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난 후에 치르는 대가가 너무 큰 것을, 다른 나라의 끔찍한 사고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피해를 줄 일 수 있는 방법이며 훨씬 경제적이다.

유화숙 울산대 의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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