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100일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 마련된 부패ㆍ공익침해 신고센터에서 관계자들이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28일 시행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5일 시행 100일째를 맞았다. 입법단계부터 큰 논란이 일며 우여곡절끝에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시행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양주와 골프로 대표되는 접대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더치페이(각자 계산) 문화가 확산됐다. 반면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으면서 외식·화훼·농축산업계가 큰 타격을 입는 등 소비위축은 현실화 됐다. 또한 법에 대한 논란과 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직장인 ‘밤문화’ 변화
과도한 접대·회식 줄고
더치페이 문화 자리잡아
교사 대상 선물도 사라져

타격·혼란 여전
외식·화훼업계 매출 ‘뚝’
권익위에 질문 1만2천여건
금품수수 등 신고는 111건

◇저녁 약속 줄고 더치페이 문화 확산

울산의 대기업 홍보·대관부서 직원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퇴근 후 취미활동으로 배드민턴을 배우고 있다. 하반기부터 퇴근시간이 앞당겨 진데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언론사 및 관공서 관계자들과의 저녁 술자리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예전에는 일주일에 2~3차례는 술자리가 있어서 저녁 시간에 취미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꿨는데 이제는 나만의 저녁 시간이 생겨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직장인들의 ‘밤 문화’다. 기자, 공무원을 상대하는 홍보·대관 업무 담당 직원뿐 아니라 회사 전반에 걸쳐 과도한 접대나 회식 자리가 줄었으며, 참석자들이 식사 비용을 갹출하는 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에는 더치페이를 위한 앱(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일선 학교의 소풍이나 운동회, 학부모 상담 등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운동회나 소풍 때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여 음식을 먹는 풍경은 이젠 옛말이 됐다. 학부모 상담시에도 학부모가 음료수나 빵 등 먹을 것을 사들고 오던 풍경은 자취를 감췄고 혹시나 사들고 오더라도 다시 되가져 가고 있다.

또 대학교에서는 조기 취업생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것이 청탁금지법에 어긋난다고 유권해석을 함에 따라 성적처리 지침을 마련하거나 학칙을 개정하는 등의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며, 교수들은 제자들로부터 캔커피 하나 받는 것까지 조심하고 있다.

◇외식·화훼업계 큰 타격…혼란 여전도

이런 가운데 소비 위축으로 내수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외식·화훼·농축산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울산지역 한정식·일식집·한우식당 등 고급음식점들은 매출이 30~50% 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 이후 자구책으로 3만원대 이하의 메뉴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으나 이마저 장사가 안되자 일부에서는 리모델링을 통한 업종변경이나 폐업을 검토하고 있다.

남구 삼산동의 한식당 업주는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려나 했는데 상황이 나아지질 않고 있다. 평년대비 매출이 30~40% 떨어지면서 올해 들어 직원을 3명 줄였다”며 “지금와서 다른 일을 찾기도 어렵고 가게를 계속 운영하겠지만 운영경비를 절감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훼업계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화분과 화환 등 전체적인 주문량이 20~30% 가량 감소했다. 특히 화훼업계의 대목인 연말연초 인사철임에도 불구, 축하 난과 화분의 주문은 평년대비 40% 가량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화훼매장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꽃집과 화훼농가들이 간신이 버티고 있긴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되면 지역 꽃집 20~30%는 문을 닫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실제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 709개 외식업 운영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4.1%는 전년에 비해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 시행 성과와 영향을 점검하고, 농축수산물 등에 대한 종합적인 소비촉진 방안을 이달 중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청탁금지법 시행 후 2일까지 권익위원회에 들어온 관련 질문은 총 1만2369건에 이른다. 권익위는 이 중 5577건의 질문에 답변했다. 권익위에 접수된 김영란법 위반 신고는 111건 수준이다. 유형별로는 금품 등 수수 59건, 부정청탁 45건, 외부강의 7건 등으로 집계됐다. 신고 경로로는 권익위 홈페이지 86건, 우편팩스 17건, 방문 5건, 국민신문고 3건 등이 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이우사기자 woos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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