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호 극작가

8세기 말엽 신라 원성왕 때였어. 영재 스님은 익살스러운 성격에다 재물 욕심이 없고 향가까지 잘 불렀겠다. 구순이 다 된 늘그막에 남악(지리산)에서 은거하려고 길을 걸어갔지. 대현령에 이르러 60명이 넘는 도적떼를 만난 게야. 도적들이 으름장을 놓았지. 가진 거 내놔. 안 그러면 작살내겠다. 그래도 영재가 말없이 갈 길을 가거든. 칼날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어 길을 막고 위협하니 아예 드러누워 노래를 하네. 도적들이 이상히 여겨 캐물었지. 영감은 누구요? 영재가 대답했지. 난 영재다. 도적들이 평소 그 이름을 들었기에 향가나 한 곡 불러달라고 하거든. 그렇다면 서동요를 부를까, 혜성가를 부를까 하니 이왕 부를 거 지어서 부르라네. 얼씨구, 기왕 부를 노래 이렇게나 해보자. 내가 선창할 테니 따라서들 부르시게나.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담긴/ 내 모습 외면하려던 날들/ 바른 길 멀다며 지나치고/ 숨어서 편한 길 가려 하는구나/ 이 그릇된 파계승의 모습이여/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 아아 이 칼날 같은 날들 지나면/ 쟁기를 지닐 좋은 날이 올 거야/ 아아 요만큼 착해 가지고선/ 극락에 들기에는 턱도 없으리.

도적들이 듣고 보니 자신들의 처지를 묘하게 빗댄 노래 같거든. 그저 감화되어 비단 두 필을 주니 영재가 말했지. 이 재물이 지옥 가는 증서야. 난 지금 아무것도 없는 산중으로 가서 여생을 보내려는데 어찌 이런 걸 받겠는가, 하고 그가 비단을 내던졌어. 도적들은 들고 있던 칼과 창을 버리고, 머리 깎고 영재의 제자가 되기로 한 거야. 그리곤 지리산에 들어가 다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단다. 일연은 영재를 위한 노래를 지어 불렀어.

지팡이 짚고 산으로 돌아가니/ 다 버린 듯 한결 깊은데/ 비단이며 구슬인들/ 어찌 큰스님의 마음 움직이랴/ 숲속의 한가로운 군자들아/ 그런 선물일랑 하지 마라/ 지옥은 바로 물건과 돈에서 나오나니.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들이 개인의 탐욕에서 나온다는 걸 안다면,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우적가(遇賊歌)’를 한 번이라도 불러본 적이 있다면, 세상이 좀은 맑아질 텐데.

장창호 극작가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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