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개인 등 역지사지 자세로
서로 양보하고 조금씩 배려하면
휠씬 따뜻한 공동체로 성장할것

▲ 신병곤 한국은행 울산본부장

농성중인 학생들이 경찰에 끌려나가는 영상을 보고 청문회에서 눈물을 훔쳤던 이화여대 모 교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명분사회라고 하면서 구성원들의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말이 기억난다. 최근 들어 심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소득불균형 문제와 관련해서도 경제주체들의 도덕성이 발휘되면 불균형의 체감정도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경제는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다소 확대되는 데 힘입어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나 안팎의 여건을 살펴보면 성장세를 제약할 수 있는 요인들이 곳곳에 잠복해 있다.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세계교역이 위축될 소지가 있으며 미국 신정부 정책, 미 연준 금리인상, 영국 EU 탈퇴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국제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거나 세계경제의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또 국내여건의 불확실성이 경제주체들의 소비 및 투자 심리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의 시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제회복 지연으로 현재 우리경제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소득불균형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국민들의 체감경기는 경제지표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소득데이터베이스(WTID)와 IMF자료를 분석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소득불균형 정도는 미국 다음으로 심하고 증가속도는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4.9%로 47.8%를 기록한 미국 다음으로 높았다. 그렇지만 1995년부터 2012년 사이 우리나라는 상위 10%의 소득집중도 증가속도는 29.2%에서 44.9%로 15.7%P 상승해 같은 기간 40.5%에서 47.8%로 7.3%P 상승한 미국을 크게 앞질렀다. 나아가 올해에도 경제회복이 지연되면서 취약계층의 증가와 함께 소득불균형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클 센델은 그가 지은 ‘왜 도덕인가(Why morality?)’란 책에서 경제적 불균형의 심화는 부자와 빈자간의 삶을 분리시키고 결국에는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과 유대감을 훼손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소득 불균형은 국민들 간에 위화감을 조성해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사축(회사에서 사육하는 가축), 헬조선(희망없는 나라) 같은 자포자기적 신조어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소득불균형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중국, 남미 등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득분배의 불균형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득불균형은 세계화 과정에서 전개된 국내시장 개방 확대, 국내 산업구조 및 고용구조의 변화 그리고 이로 인해 초래된 직종별, 기업규모별 임금격차와 함께 연금제도 및 노인복지제도가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구구조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형성됐다.

소득불균형 문제가 거대한 경제조류의 변화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라는 점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이의 해결은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이다. 쉽지 않으나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 및 정책 지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거래질서 확립, 임금체계 개선,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 연금정책의 보완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경제활동 과정에서 기업가 및 개인들이 건전한 기업가 정신과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소득불균형의 체감정도는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는 누군가에게 을이 될 수 있다. 경제주체들끼리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하면 수치로 나타난 경제지표 이상으로 우리사회는 훨씬 따뜻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신병곤 한국은행 울산본부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