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영장 기각 배경
‘박 대통령·최순실 공모...삼성서 430억 지원’ 전제
특검측 법리구성 문제 제기...대가성 입증 부족 판단한듯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19일 오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특검보가 입장을 발표한 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눈 특검 수사의 중대 분수령으로 여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에 대해 19일 법원이 고심 끝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핵심은 삼성이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설립·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씨가 지배하는 독일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인 비덱스포츠(코레스포츠의 후신) 및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총 430여억원을 지원한 부분이었다.

이 객관적 사실을 두고 청와대와 박 대통령, 최순실씨 측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삼성 측이 계열사 합병 찬성 및 이로 인한 경영권 안정화 등 반대 급부를 염두에 두고 자발적으로 낸 ‘뇌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판이하게 달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뇌물’로 봤지만 삼성 측은 ‘강요·공갈·압박’이라고 주장했다. 영장 결과만 놓고 보면 둘 사이의 프레임 전쟁에서 삼성 측이 일단 승기를 잡은 셈이다.

삼성그룹의 최씨 일가 지원과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문제를 뇌물 수사로 접근한 것은 특검팀의 대표적 승부수로 평가받았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삼성 계열사를 포함한 53개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3억원을 출연한 행위가 박 대통령과 최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공모에 따른 직권남용·강요의 결과였다고 결론 내렸다. 또 삼성이 최씨가 조카 장시호씨를 동원해 세운 동계센터에 16억2800만원을 기부한 것은 최씨와 김종 전 차관이 주도한 직권남용·강요의 결과물로 봤다.

검찰은 삼성이 승마 유망주 육성 명분으로 2015년 8월 최씨가 세운 독일 페이퍼 컴퍼니 코레스포츠와 21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가량을 보내준 과정도 수사했지만 특검팀이 출범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사건을 넘겼다.

특검팀은 그러나 대기업이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라 경영권 승계, 면세점 승인, 총수 사면 등 경영 현안 해결 차원에서 미르·K재단에 출연하고 최씨 측에 금전 특혜를 제공했을 가능성에 주목해 사건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에는 박 특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특검은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재단 기금 문제는 본질을 봐야 한다. 대기업들이 거액의 돈을 내게 된 과정이 과연 무엇인지, 거기에 대통령의 역할이 작용한 게 아닌지, 즉 근저에 있는 대통령의 힘이 무엇이었는지를 봐야 한다”고 언급해 수사 방향의 일대 전환을 예고했다.

특검팀은 이후 삼성을 우선 타깃으로 삼아 삼성을 ‘뇌물 공여자’로 결론내리고 뇌물공여, 제3자뇌물공여 혐의를 동시에 적용해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이 최씨와 적극적으로 공모해 삼성그룹에서 430여억원을 받으려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는 박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 수사로 직행하기 위한 디딤돌로 여겨졌다.

그러나 삼성 측은 박 대통령의 강요와 협박에 가까운 요구 탓에 어쩔 수 없이 최씨 회사를 통해 미르·K재단에 출연하고 최씨 일가에게 거액을 건넸다면서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특히 이 부회장이 2015년 7월과 2016년 2월 이뤄진 안가 독대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질책과 함께 구체적인 액수의 지원 요청까지 받아 시행에 나서게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우리 정치 현실상 삼성그룹이 이런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검 측의 법리 구성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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