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의 치수 푼, 치, 자 등
불법으로 규정한 탁상행정에
한옥 목수는 모두 범법자 신세

▲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부자로 살고 있는 친구가 필자에게 대한민국 땅에서 부자로 살 수 있는 방법 세 가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부자로 살기 위해서는 불법, 탈세는 물론 변태가 되어야 한다는 요지였다. 법 지키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밝은 세계의 사업을 해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친구의 지론이었다. 친구는 지금도 철저하게 자기원칙을 지킨 결과 부자라는 사회적 지위를 여전히 누리고 있다.

불법 주식투자와 호스트바까지 몰래 운영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그 친구를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솔직히 두 가지였다. 할 수만 있으면 저렇게 해서라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하나이고, 그래도 저렇게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또 다른 마음이었다. 결국 능력 부족과 얄팍한 이성적 양심 때문에 친구와 같은 길을 걷지 않고 묵묵히 한옥 목수의 길만을 걸어온 필자다.

하지만 아무리 원칙을 지키며 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질러 전과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다른 세계는 잘 모르겠고 안다고 해도 여기서 굳이 거론할 필요는 느끼지 못해 오늘은 필자가 속한 한옥 목수 세계에서의 어쩔 수 없는 불법행위에 대해 고백, 유무죄 여부를 국민 배심원이라 할 수 있는 독자 제위 여러분께 묻고자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수치는 참으로 다양하다. 무게의 단위로는 그램, 킬로그램 등 일반적인 표준을 비롯해 파운드, 온스, 돈, 관, 냥 등이 지역이나 민족, 직업군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또한 면적의 단위는 제곱미터, 평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단위는 바로 길이에 관한 것이다. 야드, 밀리미터, 미터, 킬로미터 등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치이다. 건축도면은 국제규격 적용 원칙 하에 밀리미터(㎜)로 통일돼 있다. 한옥 목수들도 현재 이 기준에 의해 정확한 면적과 길이를 산출해 내고, 목재의 재적(목재 부피의 총합)을 산출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곱미터, 밀리미터는 전체면적을 계산하거나 칸의 간격에만 적용, 운용되어질 뿐 실제 개별적인 목재의 가공(치목)은 전혀 다른 치수를 적용하는 것이 한옥 목수 세계이다. 바로 푼, 치, 자로 불리는 오래된 한옥 목수 세계만의 치수에 관한 기준이다. 한 자는 30.03㎝이고, 치는 자의 10분의1 이고, 푼은 다시 치의 10분의1이 되는 방식이다.

한두 자일 때는 별 차이 없어 보이나 길이가 길어질수록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열 자가 되었을 땐 3㎝의 오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말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한옥 목수 세계에서 유래된 말일 것이다. 정확하고 빈틈없음의 정도가 반 푼(약 0.16㎝)도 용납되지 않는 한옥 목수들의 치밀함을 인정한 데서 나온 어쩌면 영광스런 용어의 탄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치수라 할 수 있는 푼, 치, 자가 소위 국제규격이라는 밀리미터 단위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할 뿐만 아니라 한옥 목수 전체를 잠재적인 전과자로 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실제 현장에서는 예전부터 내려오고 계승된 치수의 단위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도 발 빠른 우리의 국가행정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 국내 그 어떤 업체도 푼, 치, 자를 공식적으로 새겨 넣은 공구 제작을 할 수 없도록 그 자체를 원천봉쇄 시켜놓았다.

반면 한옥 현장은 어떤가. 인간 문화재를 비롯한 그 어떤 한옥 목수도 치목을 위한 공구에 밀리미터 단위만이 표기된 공구를 쓰는 경우가 없다. 아예 푼, 치, 자만으로 된 공구이거나, 밀리미터와 푼, 치, 자가 혼용된 줄자나 곡자를 모두가 쓰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탁상행정을 펼치는 행정편의주의에 젖은 관료들에 의해 우리 모두는 일본이나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불법 공구들을 쓰고 있으니 잠재적인 전과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설픈 국제주의보다 다소 덜떨어져 보여도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정하는 융통성 있는 행정이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김훈 경주전통한옥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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