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명 성안중학교 교사

많은 사람들에게 한 해의 시작은 1월이겠지만 학교에 있는 나에게 한 해의 시작은 3월이다. 새해가 벌써 한 달이나 지났지만 이제야 마무리를 떠올린다.

2월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익숙했던 둥지를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갈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달이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기대로 들뜨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렵고 긴장되기도 할 것이다. 떠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는 항상 마음이 조급하다. 가르쳐야 할 것을 다 가르쳤는지, 당부해야 할 말들은 다 전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얼마 전 극장에서 재개봉하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제목의 영화는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의 11살 소년 빌리를 주인공으로 한다. 매일 복싱 수업을 듣던 체육관에서 우연히 접한 발레는 소년의 꿈이 된다. 탄광촌 광부들의 파업으로 인한 고단한 현실이 영화 사이사이 비춰지지만 그 어두운 현실의 틈에서도 빌리의 재능은 눈부시게 반짝인다.

몇 년 전에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어린 소년이 지닌 특별한 재능에 가슴이 뛰었다. 도무지 발레와는 어울리지 않는 탄광촌의 녹슬고 낡은 거리 위에서 비상하듯 춤추는 빌리를 보며 편견을 뛰어넘어 꿈을 향해 도전하는 빌리를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빌리는 여전히 특별했고 이제 나는 빌리 곁의 어른들의 모습에 내 모습을 겹쳐 본다.

복싱 수업에 영 적응하지 못하고 상대를 향해 주먹 한 방 내지르지 못하던 빌리는 윌킨슨 선생님을 만나고 발레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친구처럼 대해 준 윌킨슨 선생님 덕분에 빌리는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때로는 아버지와 맞서는 용기를 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그녀는 빌리를 위해 ‘발레 학교’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시하기도 한다. 친절하고 다정한 선생님은 아닐지 몰라도, 그리고 그녀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윌킨슨 선생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빌리의 멋진 비상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비롯한 영화 속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는 어른으로서, 교사로서의 내 모습이 어때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이제 졸업을 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아이들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기쁘고 좋은 일만큼 아쉽고 애석한 일도 겪게 될 테지만 모두들 그 모든 과정을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되뇌어 본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비상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은 지우고, 영화 속 빌리 어머니의 편지로 대신하고자 한다. “얘들아, 늘 자신에게 충실하렴. 선생님은 언제나 너희를 응원할게.”

이보명 성안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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