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질병 관리에서 더 나아가
건강 해치고 질병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 해결방안 찾아야

▲ 이병희 울산 동구보건소장

한쪽으로 치우침을 경계하며 균형을 지키는 조화의 자세는 개인의 삶에서부터 가정, 인간관계, 조직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는 국가의 운영에서도 바른 시각과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건강도 예외일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 헌장에는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즉 과거에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질병이나 이상이 없고, 개인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신과 신체 상태만을 말하였으나 개인이 다양한 사회 구조속에서 존재하고 집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 오늘날 사회적인 건강이란 정의가 생겨났으며 이러한 사회적 요소의 중요성으로 인해 공중보건의 필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만을 일컫는 수동적 건강관에서 진일보해 금주, 금연 등 생활습관의 변화와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려는 노력 등 개인의 능동적 태도가 강조되고 있으며 건강을 위한 사회적인 책무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인의 건강과 행복을 논할 때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 문화, 경제적인 부분이다.

예방의학이나 공중보건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지역사회건강’이나 ‘인구집단건강’ 등의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건강을 개인의 문제로 여겼던 예전에는 듣지 못했던 이런 말들이 회자되게 된데는 각별한 사회적 배경과 의미가 있다.

‘지역사회건강’은 지역사회 보건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훨씬 포괄적 의미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지역’이란 일종의 잠재적인 건강 위험 요인을 갖는 공간으로 ‘인구집단의 건강 수준(population health)’은 공간을 통해 작동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즉 특정 지역의 건강 수준은 그 지역의 보건 수준이나, 의료 환경 외에 지역의 물리적 환경(기후, 환경오염정도, 상하수도와 도시기반시설, 녹지 및 휴양시설 등)이나 사회경제적 환경(일자리, 생활편의성, 교육환경, 지방행정의 이해와 지원, 법과 관습 및 지역의 정서와 문화 등)이 주민 삶의 질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 결과로 밝혀져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중앙 암 등록자료의 암 발생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연구에서 보면 의료보험료 하위 20% 소득계층은 상위 20% 계층에 비해 암 발생률이 남자가 1.65배, 여자가 1.43배 높게 나타났고, 암 발병자중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분율인 치명률(암 진단 후 3년이내 사망할 확률)도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에 비해 남성 2.06배, 여성 1.49배 높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을 좀더 분석해 보면 소득 하위계층의 국민이 암을 유발하는 사회물리적인 환경에 더 많이 노출돼 있고, 암 진단 시기가 늦어 같은 암이라도 예후가 나쁘고, 경제적 이유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사회 계층별로 사망수준이나 건강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장기간의 추적조사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말해 불건강의 요인 즉 질환의 발생을 개인의 체질이나 건강행태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러한 행태를 지속하는 개인을 탓하게 되고, 심지어는 사회구조적으로 그러한 불건강 행태를 유발,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사회적 결정요인이 간과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집단간의 건강격차는 더욱 악화되는 편파적인 보건 사업들이 시행될 수 있다. 즉 개개인의 구성원들에게서 관찰되는 건강행태가 개인과 지역의 불건강의 주 원인이라기보다 그러한 행태를 유발시키는 사회적인 요인 때문에 건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왜 너는 금연과 절주를 하지 못하는가’하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흡연과 음주를 하게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커다란 역학적 고민이 병행돼야만 보건사업자의 건강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될 것이고 큰 맥락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병희 울산 동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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