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 대세라도 경계짓기 필요
구태·역기능적 경계허물기 폐해
오늘날 국정농단 사태의 시발점

▲ 이근용 영산대 교수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융복합 시대에는 경계 허물기가 대세다. 과학과 예술, 공학과 인문학, 클래식과 가요, 생산자와 소비자, 전통과 현대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새로운 문화와 가치가 생성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 여전히 경계 짓기가 필요한 영역도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 입법·사법·행정의 정부 영역, 국가의 공권력이 작용하는 공적 영역과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 같은 것이 그 예이다.

미디어 세계의 경계 허물기는 지난 20여년 새 빅뱅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진행됐다. 모바일 미디어 안에 과거의 모든 매체 형태가 융합됐으니, 특이점으로 대수축이 일어난 것과 같다. 텍스트, 오디오, 비디오 콘텐츠들이 하나의 플레이어에서 재생되고 향유되는 수렴현상에서 나아가 미디어와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동, 융합되는 사물인터넷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와의 경계를 허물면서 우리가 대상을 지각하고 체험하는 방식을 바꿔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는 경계를 유지해야 할 영역도 있다. 크게 공적·사적 영역 간의 경계, 산업, 금융, 문화, 교육, 국방, 외교 같은 국가 기능별 영역 간의 경계, 행정구역별 경계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국가권력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눈 삼권분립 체제, 공적 영역에 종사하는 공인이나 유명인에 대한 프라이버시권 보호의 제한 같은 것은 국가 운영의 효율성이나 시민의 알권리 보호를 위한 경계 짓기라 할 수 있다. 전염병이나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일시적으로 어느 지역의 통행을 제한하고, 자연재해가 발생한 일정 구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든가, 혹은 각종 자원보호구역을 설정한다든가 하는 것도 공동체에 필요한 경계 짓기다. 죄인을 감옥에 가두거나 정신병자를 병원에 수용하는 것도 사회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계 짓기의 예다. 도서관, 박물관, 극장, 고시촌, 고아원, 보호감호소, 요양원 같은 장소는 특정한 목적을 기준으로 경계를 나눈 공간들이다. 사회 내 공간 배치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주목한 철학자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으로 이러한 이질적 공간들의 공존 현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최근에 우리는 한류와 창조문화의 지속을 위해 융복합을 강조하는 흐름, 인간과 사물의 연결이 가속화되는 현상을 접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 조직 내에서도 협업이나 정보의 공유를 지향하는 조직문화, 공감과 공유경제의 확산을 지향하는 사회문화의 흐름이 고조되면서 경계 허물기 현상을 목격한다. 이러한 순기능적인 경계 허물기와 다르게, 과거 군사정권 때의 구태가 반복되는 역기능적인 경계 허물기도 본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야합하는 정경유착이나 길항관계에 있어야 할 권력과 언론이 밀착해 경계를 허무는 권언유착의 폐해현상을 접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경계 짓기와 허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경계 의식이 약화됨을 느낀다. 무엇이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계인지, 어떤 경계는 창조성과 공유 정신을 위해 허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별하는 의식이 약해진다. 결국에는 나에게 유리하고 내가 속한 가족과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경계만을 유지하고 강화한다. 이는 마치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작동되는 것과 같은 사태를 낳는다.

엔트로피는 특정한 공간의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로, 닫힌계에서 모든 변화는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해 간다는 것이 엔트로피 법칙이다.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공과 사의 경계를 분별하지 못한 전범 사례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특히 공인이라면 공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일과 처신의 경계를 명확히 지어야 한다. 그 경계를 허문 것이 오늘의 국정농단 사태의 시발점이다.

사물의 이름을 바로 짓고 그 이름에 합당한 직분을 수행한다는 ‘정명’, 때와 이치에 합당하게 중용의 도리를 다한다는 ‘시중’, 홀로 있을 때를 삼가며 신중하게 처신한다는 ‘신독’ 같은 고전 속의 구절과, 기개와 지조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긴 선비 정신이 되살려져야 함을 절감하면서 정유년 새해를 맞는다.

이근용 영산대 교수 빅데이터광고마케팅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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