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옛글 속의 울산팔경

 

가지산 사계, 간절곶 일출, 주전·강동 몽돌해안, 대왕암공원, 대운산내원암계곡,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 장생포 고래 문화마을,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 외고산 옹기마을, 태화강대공원과 십리대숲, 울산대공원, 신불산억새평원.

지난 2016년 울산시가 새로 선정한 울산 12경이다. 울산의 자연과 역사, 산업, 문화적 환경을 상당히 잘 나타내는 울산을 대표할만한, 산업단지 못지않게 자연환경 또한 울산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임을 보여주고 있다. 명불허전이라 했다.

남산 12봉중 끝봉의 달이 숨은곳 은월봉
처용 설화 한자락으로 등장하는 개운포
울산의 자연환경, 산업 못지않은 경쟁력
잊혀졌던 울산의 풍광 12경으로 재탄생

이미 신라 때 부터 울산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었다. 법흥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대곡천 일대를 두 번 이상 방문하여 기록을 남겼으니, 그 곳이 천전리 각석이다.

아름다운 황룡연 언덕 위에는 태화루가 있었는데, 고려사에는 997년 고려 성종이 방문하여 태화루에서 연회를 베풀어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즐긴다는 구절도 남아있다.

그리하여 고려말 울주 지주사로 부임했던 설곡(雪谷) 정포(鄭浦, 1309~1345) 선생이 여덟 군데의 경관을 지목하여 그의 저서 <설곡집>에서 울주팔경(蔚州八景)이라 이름붙이고 시를 지었으니 여러 문인이 이를 시제로 시를 지어 울주팔경의 절경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후 1413년 울주가 울산으로 행정명칭이 변경되자 울산팔영, 울산팔경으로도 불리었으니, 그 것이 과거와 현재라는 경계를 허물고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관념화되었기에 현재까지 8경 혹은 12경의 경관을 지목하게 된 것이다.

본래 팔경, 팔영의 시초는 중국 호남성의 소강, 상강의 합류점을 배경으로 여덟군데의 절경을 지목한 북송 송적(宋廸)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부터였다. 이후 많은 문인사대부들이 이를 차용해 글을 짓고 산수화를 그렸다. 고려 때 이를 받아들인 이후로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곳에 팔경을 이름 지어 이를 주제로 시화(詩畵)를 그리고 병풍을 제작하는 것이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특히 안견의 소상팔경도가 유명하다.

또한 절경에는 팔경, 구곡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팔이란 단어는 중국인의 일상생활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단어의 음이 같을 경우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해음문화(諧音文化) 즉 팔과 재물을 끌어 들인다 라는 뜻을 가진 한자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즐겨 사용한다.

또 불교에서는 해탈의 경지를 이르는 뜻으로 또는 자연의 이치를 담았다는 주역의 의미와도 관련이 있다. 대한팔경 부터 관동팔경, 단양팔경 등이 대표적이며 울산에서도 울주팔경, 서생팔경, 이휴정팔경 등을 지정해 시화(詩畵)의 주제로 쓰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포의 설곡집에 나오는 현재까지 알려진 그 여덟 군데의 지명을 살펴보면 태화루를 포함해 평원각, 장춘오, 망해대, 은월봉, 벽파정, 백련암, 개운포라고 한다.

태화루(太和樓)와 평원각(平遠閣)은 태화사의 누각으로 태화루 누각에 서면 태화강에서 바지락과 조개를 줍는 아낙네들의 모습과 또 줄을 당기며 배를 타는 뱃사공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고 강 건너 이휴정에선 담소하는 선비들의 모습도 보일듯하다.

벽파정(碧波停)은 동천과 태화강이 만나는 삼산에 있던 정자로, 백련암(白蓮庵)은 무룡산 근처에 있던 암자로, 장춘오(藏春塢)는 차가운 겨울에도 봄꽃의 향기를 품고있던 대나무와 차밭이 있던 남산과 태화강 사이의 즈음이다. 남산 12봉 중 끝자락 달이 숨은 곳이라는 뜻의 은월봉(隱月峰)은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고 개운포도 처용(處容)과 함께 역사의 한자락으로 등장한다.

특히 개운포는 처용의 탄강지로 신라 47대 헌강왕이 울산을 시찰시 지금의 개운포쯤에서 안개가 걷히질 않자 일관에게 물어 용왕을 위한 절을 지어주기로 하였더니 안개가 걷히고 그 아들이었던 처용을 서라벌로 데려갔다는 설화가 깃든 곳이다.

처용에 대해서는 지방호족의 아들, 혹은 서역 쪽에서 온 도래인(渡來人)이라는 설들이 있는데 지금 경주의 괘릉과 흥덕왕릉의 입구에 능을 지키는 석인상의 모습에서 당시 처용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 않나 한다

당시 당나라의 장안(長安)에는 대상(隊商)을 비롯한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수백명 이상 거주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이들이 개운포나 사포를 통해 신라로 들어왔다고 볼 개연성이 크니, 개운포는 울산의 사포(지금의 반구동 일대)와 함께 서라벌의 외항으로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팔경은 당시 태화루에서 맑은 날 가시거리에 있는 정경이라고도 하고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쉽게 돌아 볼 수 있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건물들을 살며시 지우고 보면 이러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 이러한 경관은 한동안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울산이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며 급속한 공업화와 도시는 급속히 팽창했다.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많이 변했고 울산은 가히 LTE 속도라 할 정도로 많이 변했다.
 

▲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그러다보니 원래 풍경은 공업화의 이면과 공장의 뒷모습으로만 인식되어 왔던 것도 묵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당시는 경제발전이 우선이었고 그에 따른 필요악이 오염이라는 오명이었다면 지금은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원래 가지고 있던 훌륭한 환경자원을 미래를 위해 다시 찾는 작업이 계속되어야하며 그것이 8경에 대한 연구와 12경을 선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의 정조는 수원화성(水原華城)을 지을 때 그 기능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강함을 이기며 시선을 압도하기에 지금도 화성은 뇌쇄적 포스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잊혀졌던 울산의 풍광, 8경이라는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해 12경으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나라 경제를 책임진 산업단지의 야경과 함께 울산 12경의 걸출한 아름다움이 울산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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