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러시아 등 어두운 역사 규명 나서

지난 세기 전반부에 암울한 역사를 겪은 동유럽국들에서 역사 규명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폴란드가 정부 지원으로 2차 대전 중 악명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의 주범들을 밝혀낸 데 이어 러시아에서도 1930년대 스탈린에 의한 이른바 대숙청 시기의 가해자들의 면모가 역사 규명 작업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어두운 역사 규명이 지금까지는 주로 피해자들에 초점이 맞춰져 왔으나 이제는 가해자들의 전모를 밝히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6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탈린 시대 대숙청 가해자들에 대한 규명작업을 소개했다.

특히 희생자 단체나 관련 연구소가 아닌 한 민간인의 노력으로 스탈린의 테러를 집행한 4만 명의 하수인들의 명단이 공개된데 주목했다.

스탈린에 의한 대숙청이 횡행하던 1937~1938년 사이 약 150만 명이 체포되고 70만 명이 처형됐다.

그리고 피의 숙청을 수행한 기관이 비밀경찰인 NKVD(내무인민위원회)였다.

같은 시대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킨 것도 스탈린의 명을 받은 NKVD에 의한 것이었다.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안드레이 주코프(64)란 민간인의 노력으로 당시 학살을 주도한 NKVD 요원 4만 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주코프는 지난 1993년부터 모스크바의 문서보관소를 출입하면서 1930년대 NKVD 가 내린 수천 건의 명령서를 조사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마침내 당시 학살에 관여한 NKVD 요원들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명단이 만들어졌다.

숙청에 책임이 있는 NKVD 간부들의 신원은 이미 밝혀진 바 있으나 말단 요원의 신상까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학자들이 곧 주코프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나서면서 스탈린의 죄악을 추적해온 테러희생자 추모회는 주코프 리스트를 CD로 만들어 배포하고 온라인을 통해 공개했다.

추모회의 얀 라친스키 공동회장은 주코프란 한 개인에 의해 방대한 추적 작업이 이뤄진 데 찬사를 보내면서 한편으로 주코프 명단에 오른 4만 명 모두가 ‘도살자’는 아니며 이 중에는 상부 명령을 거부해 처형된 사람들도 소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탈린 시대 유혈 숙청에 가담한 4만 명의 NKVD 요원 가운데 약 10%는 나중 처형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탈린 정권은 반대자뿐 아니라 숙청을 실행한 NKVD 요원들도 상당수를 처형하거나 유형에 처했다.

대숙청의 책임자로 악명 높은 당시 NKVD의 총수 니콜라이 예조프도 후일 처형됐다.

추모회의 역사가인 니키타 페트로프는 빈곤과 기아가 횡행하던 1930년대 멋진 제복과 식량을 받는 NKVD 요원은 존중받는 직업이었다면서 그러나 5년도 못돼 수천 명을 처형하는 일을 하게 될지는 미처 몰랐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보다는 희생자에 초점을 맞춰온 추모회는 소련 시대 탄압으로 인한 희생자 270만 명을 데이터베이스에 담고 있으며 올해 60만 명이 추가될 전망이다.

라친스키는 그러나 이는 소련 시대 전체 희생자 1200만 명의 4분의 1에 불과한 숫자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지난 2013년 결성된 ‘파이널 어드레스(마지막 주소)’라는 숙청희생자 추모 단체는 희생자들이 거주했던 곳에 희생자 명패를 설치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소련 시대 정치적 탄압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이러한 민간차원의 노력은 그러나 러시아 정부로부터 별다른 주목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스탈린 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는 것은 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정권에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푸틴 정권은 스탈린이 주도한 2차 대전 승전을 러시아의 민족적 단합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반 대중의 대숙청에 관한 기억이나 관심도 미미하다.

러시아 내 교과서는 한결같이 스탈린 시대의 대숙청을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실수’로 표현하고 있다.

주코프가 공개한 4만 명 가운데 극소수는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도 있다.

페트로프는 명단 공개가 이들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당시 소련 국가와 기관의 범죄적 본성을 인정할 필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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