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시위주 교육에 내몰린 청소년들
인간 본성인 수면욕구마저 강제당해
중고교 시절 지치고 피곤한 상태서
경쟁에만 몰두하면 인격형성 어려워
청소년에게 잠잘 권리를 돌려주어
맑은 정신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고 세상을 배우도록하자

바야흐로 졸업과 입학의 계절이다. 그런데 서로 축하하고 설레어야 할 학생들의 표정이 어쩐지 지치고 긴장되어 보인다. 한층 더 심해진 경쟁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일까?

우리나라는 분명 민주주의 국가인데도 자라나는 청소년의 자연스런 본성을 마구 억압한다. 사춘기에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데도 잠을 못자도록 부추기고, 한창 운동하고 활동할 나이에 하루 종일 실내 생활을 강요한다. 초·중등학교에서는 학원으로, 고교에서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방법으로 학생들을 장시간 실내에 가두고 수면을 제한한다. 이들에 대한 수면박탈과 활동제한은 이젠 당연한 듯이 인식되고 때로는 인간 본성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교육열과 학업성취도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수면 및 자율 활동 제한과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세계 최저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입시 지상주의 교육과, 졸업 후에도 취업난 때문에 공무원 시험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안도 한 몫 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어려워지고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는 사회에서 나 혼자 경쟁을 피해 살아갈 수는 없다. 부모들도 자녀들이 못자고 졸려 하는 것이 안쓰럽지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대다수 청소년들이 그런 생활을 감수하고 있는데도 겉으로는 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수면을 줄여서 시험경쟁에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말 잠을 줄여서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까? 그럴 리 없다. 간혹 한정된 범위의 시험에 대해 준비가 워낙 부족해서 벼락공부를 해야 될 때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수면시간을 줄여서 성적이 오르길 기대할 수는 없다.

하루에 5시간 이내로 수면을 줄이고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입학했다는 학생을 보고 자신의 아들도 본받게 하고 싶다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공부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학생의 악착스럽게 공부하는 태도가 도움 되었을지 몰라도 수면 시간을 줄여서 효과를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학생이 수면을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수면 부족이 학습에 실제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수면시간이 한 시간 정도만 감소해도 신경인지검사에서 반응속도, 집중력, 기억력 등이 심각하게 저하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10여 년간 새로이 시행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면 자체의 기억 강화 효과의 증거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우리의 뇌는 깊은 잠을 자는 동안에 낮에 일시적으로 해마에 저장했던 기억을 재활성화하고 대뇌 피질에서 재조직해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킨다. 더 나아가 다음날 정보를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정리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자는 시간이라고 해서 결코 게을리 보내는 아까운 시간이 아닌 것이다. 언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린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길고 깊은 수면시간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중고교 시절에 오랫동안 무리하게 수면을 줄이고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경쟁에 몰두하는 것이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도 걱정스럽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절할 방법이 없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여기에는 식약청의 승인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도 없다.

학교에서는 오로지 시험 경쟁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한 편에서는 학생들의 일탈 행동이 간혹 보도되곤 한다. 나라에서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서 2015년에는 인성교육진흥법을 공포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체계에서 인성교육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교육 내용보다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삶을 깨닫기 때문이다. 도덕 교육에서 공감과 배려를 아무리 강조해도, 학생들은 주위에 대한 무관심과 냉정함이 자신의 공부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와의 교류, 부모와의 대화, 시행착오를 통해서 익혀야할 감정과 습관을 지식으로 주입해준다고 되지 않는다. 봉사활동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는 경쟁력을 위한 스펙으로 여겨지곤 한다.

대학에서는 입시에서 인성을 평가하고 입학 후에는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입시 면접에서 수험생의 인성을 평가하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 순발력과 자기포장능력에 대한 평가가 되기 쉽고 또 하나의 사교육 시장을 만들게 된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제안을 하고 싶다. 청소년들에게 잠잘 권리를 돌려주어 그들을 푹 자게 하자. 그리고 맑은 정신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고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이것이 인성교육의 첫걸음이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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