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은 달콤한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사로움

▲ 엄계옥 시인

시를 읽으며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과 발렌시아 지방의 거리를 측정한다. 이 시는 발이 없다. 동사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와락, 와서 안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스페인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로 향한다. 시가 와락 온 까닭이기도 하다. 말은 혼의 전령이라서 시참(詩讖)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붙이와의 재회를 상상한다.

시는 스페인의 어느 작은 호텔 방으로 두 마음을 안내한다. 방의 이미지를 빌려오면 창문으로는 신선한 밤바다가 보이고 탁자 위에는 오렌지 대신 귤이 있다. 양탄자 위에는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내 침대속의 너’를 안고 달콤한 상봉을 꿈꾼다. 그 방의 낯설음과 무사함에 대한 안도로 지금 ‘내 삶의 따사로움’은 알리칸테의 푸른 물결을 밤새 춤추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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