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왕 울산발전연구원 울산평생교육진흥원 센터장

졸업시즌에 눈길을 끄는 졸업식 장면이 신문에 실렸다. 얼마 전 서울 종로에 있는 평생교육학교인 진형중고 졸업식이었다. 졸업생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는 등 혼란스러운 시대에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 대신 일터에 나가야 했던 이들이다. 공부에 한이 맺힌 이들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백발의 노년에 졸업장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이러한 눈물의 졸업식은 시민학교, 푸른학교 등 울산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의 졸업식장 풍경이기도 하다.

‘이제는 서럽지 않은 행복한 책가방. 나는 오늘도 책가방에 행복을 한가득 넣고 학교에 간다.’ 지난해 울산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울산시장상을 수상한 시 ‘책가방의 행복’의 한 구절이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해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책가방이 나이가 들어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언젠가는 학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이루어진 기쁨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배움의 꿈을 접었지만 노년이 된 지금 그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께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 하셨으니 이분들이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이분들의 사례는 소외계층에 대한 평생교육 지원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고령사회 어르신들의 학습 필요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노년에 학습의 기쁨이 배움에 한이 맺힌 이분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100세시대, 장수시대’가 시작되었다. 과거와 비교해서 적어도 20년 이상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금, 지속가능한 기쁨을 줄 수 있는 은퇴 이후의 학습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한국전쟁 후 교육기회가 확대되던 시기에 학교를 다닌 세대로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교육적 성취를 경험한 세대이다. 또한 이전세대에 비해 고등교육과정을 마친 후 숙련된 노동력을 가진 세대로서 70~80년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주역이다. 이들은 배움에 대한 욕구가 높고 활동적이어서 이전세대에 비해 복지관을 자주 찾지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의 평생학습은 교양수준의 일회성 강의가 아닌 대학수준의 전문 강좌, 지속적인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전세대가 그러하였듯이 베이비부머 세대 역시 그동안 직장과 사회에서 새로운 분야에 학습을 할 공적인 기회가 없이 자신의 역량을 소진해 왔다. 그리고 ‘일’을 매개로 한 사회적 관계망에서 대부분의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은 ‘일’을 멈추게 되는 순간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버린다. 이제 베이비부머의 퇴직이후의 삶은 ‘일’에서 ‘학습’을 매개로 한 관계로 전환돼야 하며 공적체제 안에서 이들의 학습을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에서는 고령층은 대학의 일반 학자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형성돼 있고 배움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노년의 평생학습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스페인어를 배우거나, 미술사를 공부하거나, 북 클럽에 가입하고 싶었습니다.”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을 위해 시작된 U3A(University of the Third Age)의 한 모습이다.

이제 퇴직이후의 노년의 학습, 인생 후반전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다. 노년기에 새로운 맴버와 배우고 모임을 갖는 학교가 있고, 노년에 “친구야. 학교가자”고 하는 것이 일상화 되는 사회가 될 때 은퇴 이후의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모습을 보게되는 것을 아닐까? “Never too old to learn(학습하기에 결코 늙은 나이가 아니다).”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행복한 책가방’의 주름진 얼굴의 주인공처럼 새롭고 지속적인 만족을 누리는 노년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노년의 모습이었으면 한다. 교육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학교교육 시스템을 갖췄듯이 이젠 평생교육으로 모든 나라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학습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선두에 울산이 자리하기를 소망한다.

신기왕 울산발전연구원 울산평생교육진흥원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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