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마테스와라(Gommatesvara)의 거대한 나신상이 있는 자인교 최고의 성지 스라바나 벨라골라(shravana belagola).

연못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바위산
자인교 최고 성지 스라바나 벨라골라
네 발로 기어오른 정상서 만난 석상
해탈은 간곳 없고 박제된 유적만 남아
외경 과시하며 참교리는 담지 못하는
현대 종교건축에 대해 새삼 생각케해

인도 사회의 계급적 차별성과 빈부의 극단적 격차, 가난과 천대에 찌든 천민들의 삶, 사회적 무관심과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의식은 인도를 여행하는 내내 풀리지 않는 화두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한 시간 내내 옆구리를 찌르며 구걸하다가 돈을 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냉정하게 돌아서 버리는 그들의 태도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선행할 기회를 주었으니 네가 고마워해야지’라는 말까지 듣게 되면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힌두교에 대해서도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현생의 삶이 고단할수록 내세에는 보다 높은 계급으로 태어날 테니 참고 견디라고? 유교적 전통에 길들여진 내게는 그저 갈등과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선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회의 사슬을 끊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나아가 대중의 구원을 통하여 현세적 극락세계를 추구하려 했던 석가의 가르침은 왜 인도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일까? 인도 종교나 역사의 전공자도 아니면서 오지랖 넓게 이러한 의문과 씨름하던 중 자인교(자이나교)라는 다소 생소한 종교와 만나게 된다.

스라바나 벨라골라(shravana belagola), 이 괴상한 이름의 유적은 자인교 최고의 성지로 알려진다. 그 이름만큼이나 장소, 건축, 종교에 있어서도 기묘하고 독특하다. 평원 위에 우뚝 솟은 두 개의 바위산 사이에 연못이 있어 이를 ‘스라바나의 하얀 연못’이라고 부른 것이다. 뜨겁고 건조한 평원 속에 방대한 연못을 바라보며 마주 선 바위산은 영험한 기운이 스며있는 수도의 장소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빈디야기리(Vindhyagiri)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돌산인데 문수산 깔딱고개 보다 약간 낮으나 경사는 훨씬 급하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거대한 바위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만든 계단을 맨발로 올라야 한다. 앞사람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뙤약볕에 달구어진 614개의 계단을 네 발로 기어오르다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려고 관광객에게 이러한 고통을 강요하는 것일까? 체력이 소진될 때쯤 정상부에 올라 사원의 입구와 만난다.

여러 겹의 통로와 문을 거처 사원에 도달하는 과정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유사하다. 건축과 부조의 예술성도 힌두신전에 못지않다. 사원의 중정에 들어서는 순간 하늘로 향한 거대한 석상이 시각을 압도한다. 바로 고마테스와라(Gommatesvara)의 거대한 나신상이다. 그는 신이 아니라 ‘깨달은 자’라는 뜻의 트리탕카라(Tirthankara)에 불과하다. 철저한 무살생,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극단적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었던 그는 명상에 들어 다리에서 나무 덩굴이 자라나고, 흰개미가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한 해탈의 경지를 거대한 입상에 직설적으로 조각한 것이다.

그는 해탈하여 성자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인도사회를 구원하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신전이나 다를 것이 없는 이 유적도 자인교의 교리와 교감되지 않는다. 사원의 어디에서도 당시 주류 종교였던 브라만교에 대항하여 사회적 평등과 평화로운 공존, 해탈을 추구했던 교의적 이념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만물에 대한 사랑, 타 종교에 대한 관용, 초월적 존재에 대한 부정 등의 현대적이고도 심오한 교리가 표출되지도 않는다. 이집트나 그리스의 거대한 신전처럼 지난 시대의 유물로 박제되어 있을 뿐이다.

이 시대의 자인교 또한 인도의 좁은 지역에 소수 신자들만의 독특한 종교로 남아 있다. 세상을 구원하려던 심오한 사상은 사라지고, 신자들에 부과된 기이한 생활규범으로만 알려진다. 땅 속의 생명을 건드릴까봐 농사도 못 짓고, 물속의 생명을 다치게 할까봐 강을 건너지 못하고, 밟아 죽일까봐 빗자루로 쓸고 다니며, 아무 생명도 해치지 않기 위해 단식하다가 굶어죽는 것을 최고 경지로 삼았다고 한다. 그 목적이 아무리 신성하다고 해도 속세의 인간을 교화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바위산을 내려오며 오늘날 종교건축과 그 교리를 생각한다. 교회가 ‘하느님의 집(Domus Dei)’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의 집(Domus Ecclesiae)’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성서로부터 기원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종교건축들은 아직도 중세시대의 고딕성당처럼 어마 무시한 규모와 높이, 화려한 장식으로 ‘거룩한 하느님의 집’임을 과시한다. 거기에서는 ‘외경’만이 존재할 뿐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교회이며 사찰인가? 진정 ‘하느님의 집’이라면 신자들과 묶어 부동산으로 매매될 수 있는 것인가?

석가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은 보리수나무 밑이었고, 최초로 설법을 열었던 곳은 사슴이 뛰노는 들판이었다. 예수는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초대교회는 지하 공동묘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분들이 오늘날 다시 오신다면 어디에서 불쌍한 백성들을 만나게 될까? 그 엄청나고 화려한 성전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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