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동해바다의 꽃 주상절리

▲ 동해안 해파랑길 10코스는 울산 정자항에서 경주 나아해변까지 14.1km에 이른다. 소요시간은 5~6시간 정도. 억겁의 세월이 담긴 주상절리와 푸른 동해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하게 되는 코스다. 경주 양남면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의 ‘주상절리 파도소리 길(아래)’에서 더 내려오면 울산 강동 화암 주상절리(위)가 이어진다. 한다발 연필을 포개 놓은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수면 아래 더 넓게 분포돼 있다고 한다. 김동수기자

2000만년전 용암의 흔적 ‘주상절리’
울산~경주~포항 해안선에 펼쳐져
울산 강동 화암주상절리는
누워있는 ‘와상절리’ 가 대부분
역사 담겨있는 ‘미역바위’도 볼거리

학창시절 친구들과 동해남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떠나던 해안 여행은 참으로 재미났었다. 단골 M.T 장소였었던 일광, 월내 서생 등은 해안절벽 위에 풀숲만 가득했던 시절이었고 바다를 끼고 살았기에 누리던 상이었다. 바다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다. 해양 영토를 넘어, 관광과 수산자원으로서의 가치, 해양교역로 로서의 기능까지 특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울산도 바다와 함께한 역사와 문화가 유구하며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 제작된 반구대암각화에는 60여점에 달하는 고래모습과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어 상당부분의 식량을 바다와 연관 되어진 것이 확인되며, 신라시대에는 수도 서라벌의 외항으로서 역할이, 근대의 역사 속에는 일본과 러시아가 장생포 포경기지를 두고 경쟁했을 정도로 천혜의 어항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콘텐츠 즉 고래를 테마로 한 관광산업이 지금 울산관광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62년의 지금의 공업단지를 있게 한 울산 특정공업지구 선정도 울산이 바다를 끼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갯바위들이 간간이 서있는 해안선을 낀 맑은 물과 아름다운 정경을 가진 동해인을 따라 부산에서 시작해 고성까지 해파랑 길을 연결해 동해바다의 여행길을 밝혀주고 있는데 특히 울산과 경주, 포항의 해안선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특별한 정경을 볼 수 있다. 그 특별한 정경과 재미중 하나는 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하는 기둥모양의 바위 무더기이다.

우리나라 해안과 내륙에는 70여개 정도의 주상절리가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모양도 다양해서 곧게 서있는 기둥모양, 누운 기동모양, 비스듬이 기울어진 모양, 산정상부에 장대한 기둥정수리를 가진 모양 등 다양한 모습들이 보인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분출하며 외부온도에 의해 식으며 만들어지는 모습으로 식은 돌무더기가 풍화와 침식, 압력 등으로 갈라져 오각형, 육각형 등의 모양으로 만들어 진 모습이고 간혹 양파껍질처럼 한 겹씩 뚝뚝 떨어져 나가는 모습은 주상절리의 하나인 판상절리라고 하기도 한다. 뜨겁고 치열했던 당시를 보여주는 곳 중 최근 가장 핫한 곳이자 관람객들의 플레쉬를 사정없이 터뜨리게 하는 곳이 경주 읍천 주상절리이다. 전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유형인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를 중심으로 쉐브론형, 분지형 등 포항, 울산을 거치며 거의 모든 유형의 주상절리가 망라되어 있다고 하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사경계지역이라 입구도 찾기 어려웠고 일부 사진작가나 주민들에게 알려져 있던 곳이 지금은 관광객의 증가로 전망대공사, 편의시설설치 등으로 고적으로 유명한 경주에 새로운 먹거리가 되고 있다. 그야말로 원자력을 끼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 새로운 산업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경주와 연계되어 화암(花巖), 말 그대로 꽃바위, 울산에도 꽃처럼 핀 주상절리가 있다

울산의 지질의 대부분은 중생대에 생성되었다고 보지만 주상절리는 대체로 신생대 마이오세기에 생성된 것 이라고 보고 있어 대체로 강동해변 쪽이 울산에서 가장 젊은 땅으로 본다.

울산의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대체로 용암이 바다로 밀려들어가서 생성된것 처럼 보이는 누워있는 와상절리(臥狀節理)의 모양이다. 근처의 주상절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곁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바다 아래쪽이 더 넒게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마치 연필을 포개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국수다발을 포개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바다에 꽃처럼 피어있는 주상절리는 울산의 뜨겁고 치열했던 지질의 변화도 알수 있는 다양한 학습의 장도 될 수 있음이다.

또한 근처에는 곽암(藿巖)일명 미역바위라는 바위가 있고 그와 관련된 고려시대 울산을 지배한 울산의 유력자 박윤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통일신라 말 울산의 유력한 호족세력이었던 울산박씨의 시조 박윤웅(朴允雄)은 당시 신흥세력이었던 고려 태조 왕건에게 기울어 그에게 충성을 약속하고 이에 왕건은 그에게 농소지방의 채지권(採池權)과 강동 유포면 판지마을 미역바위를 하사 한다.

12개의 곽암(藿巖)은 그 후 박씨 집안에서 관리하다 조선말 어사 박문수에 의해 나라에 귀속되었고 그 후 매년 흉년이 들자 다시 박씨 집안으로 1개를 돌려주었다 한다

▲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지금은 어촌계의 주민들이 수확하여 일부분을 박윤웅의 제사 때 마다 보내어 사용한다고 한다. 조선 말 울산이 가장 많은 미역세를 납부했다는 기록이 있어 울산은 질 좋은 미역을 생산한곳이며 또한 당시 미역은 상당한 고급 물품 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그 미역바위가 해중(海中)에 정수리 부분만 조금 드러나는 모습이지만 지금도 그 일대에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급의 미역이 생산되고 있고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바다와 강과 영남 알프스 등을 끼고 있는 울산은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다는 기록을 세종실록(世宗實錄),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등의 고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산의 풍부함은 환경의 다양성과 질이 높았다고 볼 수 있고 울산의 해안은 신생대의 주상절리와 근처 해안단구(海岸段丘)에서 보여 지는 조개화석 등의 자연사와 더불어 미역바위와 유포석보, 신라 충신 박제상 발선처(朴堤上 發船處) 등 수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충분한 하드웨어를 간직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박혜정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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