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스치고 간 칼날들이 그믐달로 뜬다

일생 땅에 집을 짓지 못하는 칼새의 짧은 다리, 긴 날개
허공에 알을 놓고 허공을 박차고 허공에서 낫을 갈고
허공만이 그의 허파였던

▲ 엄계옥 시인

달은 수만 가지 생각 덩어리다. 북반구 기준에서 보면 왼쪽이 불룩한 상념의 가지들, 때로는 우리님의 고운 눈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의 칼날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시인의 분신이다. 허공에 집을 짓고 살던 때가 있었다. 바람을 거슬러 사느라 다리는 짧아졌고 어깻죽지는 길게 늘어나 칼새가 되던 때. 일생 땅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느라 숱하게 베였다. 베이지 않기 위해 더 높은 곳을 찾았고 급기야 허파는 공중에 그믐달이 되어 걸렸다. 공중에 매달린 삶은 불안하다. 추락은 곧 날개를 다시 펼칠 시간이다. 벼랑이 가파를수록 심장은 심하게 뜀박질을 한다. 생은 야위었다가 차오르길 반복하는 것, 달의 배경이 어둠이라서 홀로 높이 떠서 빛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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