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오츠카 국제미술관

▲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실물 크기로 재연한 작품. 멀리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보인다.

25개국 1천여점의 명작 전시
고대~현대 시대별 거장 작품 총망라
바티칸 시스티나예배당 천장화·벽화
佛 생마르탱 성당·폼페이 등도 재현

세계 최초 도판명화미술관
도자기 판에 세계 명화 전사해 구워
2천년이 지나도 색·모양 그대로 유지
원작이 걸린 공간까지 그대로 옮겨와

일본서 두번째로 큰 미술관
자연환경 유지, 땅속으로 파고들어가
외부보다 실내가 더 넓은 구조 ‘눈길’
지하3층 지상 2층 연면적 3만㎡ 달해

아름다운 미술관은 도시를 바꾸고 삶을 변화시킨다.
울산도 이제 곧 미술관 도시가 된다. 새로운 흐름은 새로운 문화를 낳기 마련.
이미 오래 전부터 국내외 미술관을 섭렵한 애호가, 미술의 매력에 새롭게 눈을 뜬 입문자는 물론
미술관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까지 미술을 매개로 한 뉴스에 귀를 귀울이고 있다.
한달에 한번씩 연재될 ‘행복한 미술관’은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기 보다는
누구나 부담없이 미술을 읽고, 미술관을 찾도록 유도하는데 목적을 둔다.

오츠카(大塚)국제미술관(관장 오츠카 이치로)은 올해 개관 30년이 됐다. 미술관은 오츠카(大塚) 제약그룹이 지난 1998년, 창립 75주년을 기념해 일본 내 도쿠시마(德島)현 나루토(鳴門)시에 설립했다. 도쿠시마는 오사카 및 고베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2시간30분 쯤 달리면 도착하는 곳이다. 나루토해협은 우리나라 남해안처럼 굽이치는 소용돌이가 압권이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대교를 지나면 나루토국립공원이 이어지고, 미술관은 국립공원 내 해안의 언덕배기 아래에 자리한다.

▲ 전세계 미술관에 흩어진 명화들을 한 공간에서 도판복제 돼 전시돼 있다.
 

국제적 규모를 자랑하는 이 미술관은 정통 미술관과의 차별화로 관심을 끌었다. 일본 내에서 두번째로 큰 미술관이자 사립미술관으로써 연면적이 3만㎡에 이른다. 밖에서 볼 때는 2층 규모의 건물일 뿐이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밖에서 본 것 이상으로 넓어 대부분 놀란다. 나루토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해안가 절벽과 구릉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땅 속을 파고 들어가 외부보다 내부 실내공간이 더 넓게 디자인 됐다. 내부는 지하 3층부터 지상 2층. 각 전시실을 안내하는 화살표 방향대로 걷다보면 약 4㎞의 미로처럼 동선이 이어진다. 하루종일 머물러도 전체 공간을 구석구석 살피기에 부족할 정도다.

무엇보다 이 미술관은 ‘세계 최초의 도판 명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전시작품은 말 그대로 ‘도자기로 만든 커다란 판’에 전 세계 명화와 벽화를 똑같은 크기로 재현한 것이다. 일종의 복제품이다.

▲ 미술관 입구에서 바라 본 시스티나홀. 바티칸 예배당 공간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 하다.

도판 명화는 오츠카 그룹 내 오츠카 오오미 도업주식회사의 연구개발로 만들어졌다. 납작하거나 원형으로 구부러진 도판에 실물 원화의 이미지를 충실히 전사해 몇번이고 수정을 거듭함으로써 오리지널 작품과 최대한 가깝도록 만든다. 최종 마무리를 고려해 유약을 결정하고 색분해, 제판, 전사 등의 각 공정을 거친 뒤 1300도 고온에서 구워낸다. 색의 퇴색을 방지하고 오랫동안 본래의 상태를 유지한다. 도판에 재현한 명작은 종이나 일반 캔버스, 흙벽에 비해 세월이 흘러도 색이 결코 바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판 명화는 2000년이 지나도 그 색과 모습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미술관은 원화의 경우 각종 외부요인으로부터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와 보존처리가 필요하지만 도판 명화는 복제품이긴 하나 원작과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했고 이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는 이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다. 게다가 일본 안에서 전 세계 미술관의 유명 소장품을 두루 관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술관에서는 고대 벽화부터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세계 25개국·190여 미술관이 소장한 1000여 점의 명작들을 도판 명화로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의 또다른 특징은 일종의 복제화인 도판 명화를 단순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원작이 걸린 유럽 유수의 미술관 공간을 그대로 옮겨 왔다는데 있다. 유럽의 미술관을 굳이 가지 않고도 그 곳과 흡사한 실내 공간 안에서 명작이 내뿜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도록 구현한 것이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시스티나홀’이 대표적이다. 시스티나홀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벽화를 온전히 옮겨놓았다. 선명한 색채로 그려진 5명의 무녀와 7명의 예언자가 그려진 아치형 천장, 이스라엘 구제의 기적 이야기가 표현된 스팬드럴(spandrel)이 더해져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우주창조 최초의 순간부터 종말의 마지막 순간까지 미켈란젤로가 구현한 장대한 종교적 세계를 굳이 이탈리아 현지에 가지 않고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현지와 달리 이 곳에서는 공간을 배경으로 마음껏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공간 연출 전시실은 시스티나홀 이외에도 스크로베니 예배당(이탈리아), 생 마르탱 성당(프랑스), 폼페이의 비밀의 방,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의 ‘대수련’(야외전시장)이 더 있다.

▲ 지상 1층에서 내려다 본 실내전경.
 

미술관 관람은 시대를 건너뛰어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사의 새로운 기점, 피카소의 ‘게르니카’(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소장)와 전후 미국미술을 세계화로 이끈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여유롭게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블루톤의 막대 그래프가 연상되는 미술관 상징마크는 이 곳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도판 명화의 집합체’ 임을 알려준다. 블루톤은 서양 명화 중에서 가장 고가의 물감으로 사용된 ‘라피스라줄리 블루’를 중심으로 한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수태고지’에 사용됐던 색상으로, 직역하면 ‘바다 건넌편’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일본에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편의 훌륭한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자는 미술관의 지향점이 반영된 것 같다.

▲ 단체 관람객을 시대별 동선따라 안내하는 로봇 도슨트.

◇미술관 관람팁

오츠카 국제미술관이 나루토시에 세워진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주변이 오늘날의 오츠카 그룹을 있게 만든 도업회사의 원료 산지이기 때문이다. 한 기업체가 성장의 배경이 돼 준 곳에 회사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관광수익창출과 문화생활영위를 위한 미술관을 세운 점은 산업수도 울산으로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오츠카 미술관은 일선 학교와 청소년단체들이 서양미술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주로 찾는 산교육장이다. 기업체의 사회환원을 벤치마킹하는 연수장소로도 자주 사용된다.

▲ 홍영진 기자 경상일보 문화부장

30년 전 이미 복제품 미술관을 기획하고 실제로 시도한 점이 놀랍다. 다만 명품 원작에 아닌 도판 복제품이 주류라는 점에서 관람객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도 사실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다양한 형식의 명작 복제품이 나오고, 기획전 역시 단순관람 형태가 아니라 쌍방개념의 변형된 전시가 대중화된 만큼 좀더 새로운 형태의 볼거리가 보강돼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원작과 비교해 감동의 깊이가 따라주지 못한다며 복제품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애호가도 적지않다.

홍영진 기자 경상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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