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울산 찾아...지역 6·25 참전용사들 증언 청취회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전시회도 열려

▲ 23일 울산시 남구 목화웨딩홀에서 열린 국방부의 울산지역 유해발굴사업 설명회 및 참전용사 증언 청취회에서 한 참전용사가 국방부 분석관에게 참가전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푸른색 배경지 앞에 놓여진 의자에 앉은 80대 어르신은 60여년 전 6·25한국전쟁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은 어르신이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가급적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선 3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르신이 입을 뗐다. “경기도 가평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됐지만 결국 공비들에게 포위돼 우리 부대에서 절반 밖에 못빠져 나왔지.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되기 전엔 영천 신녕전투에 투입됐는데 그때도 몇 명이 죽고 다쳤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참혹했다네.”

6·25 한국전쟁 참전자인 울산의 유철희(86) 어르신의 증언이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로 가게 된 그는 국군 6사단 3대대 9중대 소총병으로 참전했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해냈다. 어르신이 참전했다는 신녕전투는 1950년 8월30일부터 9월15일까지 국군 6사단이 북한군 8사단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로 기록돼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이 23일 울산 남구 목화웨딩홀에서 울산지역 6·25 참전용사 9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전쟁 증언 청취회 장면이다. 국유단은 지난 2015년부터 참전용사 증언을 청취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전투현장에 남겨둔 전우의 유해소재에 대한 증언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문서로 기록하는 사업이다.

지난 1950년 9월10일 입대했다는 이춘락 어르신은 미 육군 3사단에 배치돼 미군들과 함께 훈련을 받은 뒤 11월17일께 함경남도 원산으로 향했고, 당시 이북전투에 투입됐던 기억을 털어놨다.

김덕중 어르신은 20살 때 입대해 이듬해 백마고지전투(1952년 10월6~15일)에 참전한 기억을 되새겼다. 그는 “북한군에 의해 사망한 시신을 처음에는 한 구씩 옮겼지만 사망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짐짝처럼 옮기는걸 본 기억이 난다”며 참혹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국유단은 신녕전투나 백마고지전투 등과 같이 남한에 위치한 격전지에 대해서는 분석작업을 거친 뒤 유해매장 예상지역을 선정해 발굴작업을 벌인다. 하지만 이춘락 어르신이 증언한 함경남도 원산 등 북한지역의 경우 기록으로 남겨둬 향후 발굴 가능시 활용할 예정이다.

이날 증언청취 뿐만 아니라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전시회도 열렸다. 총탄에 뚫린 철모, 수통 등 유해발굴지역에서 찾아낸 각종 전투 장비와 유품이 전시됐다. 참전용사들은 60여년 전 자신들 또는 미군, 북한군, 중국군이 사용한 생활·전투유품을 보며 참혹했던 과거를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3년전 침몰한 세월호가 처음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 23일 한국전쟁 증언 청취회가 진행되다보니 일부 어르신은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한 전사자가 수두룩한데…”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유해발굴사업은 2007년 국방부 감식단이 창설된 이후 현재까지 국군 전사자 9500여 위를 발굴했다. 하지만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121명에 불과하다. 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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