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 계속되는 SNS업무지시
스트레스 유발·사생활 침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해야

▲ 안미수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정책연구팀장

우리의 봄은 각 학교의 입학식과 함께 시작되는 듯하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아이들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지만 처음 학부모가 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 다양한 경험들 중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기존의 관계 외에 자녀의 선생님, 같은 반 학부모 등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되는데 이런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절차가 소위 ‘단톡방’이라고 하는 모바일 메신저 단체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어떤 이들은 학부모 단톡방으로 인해 고민에 빠진다. 자녀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다른 아이의 학부모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지만 수시로 울리는 단톡방의 대화 요청에 어느 범위까지 답을 해야 하는 건지, 답을 하고 싶지 않은데 답을 달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순 고민한다. 뿐만 아니라 각자의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단톡방에 들어오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단톡방의 공해 속에서 아예 단톡방 알림설정을 무음으로 변경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위 ‘카·페·인(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스트레스라는 신조어가 생긴 듯하다.

요즘은 각자의 스마트폰에 이러한 모바일메신저가 적어도 한 개 이상은 깔려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고, 언제나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없어 연락이 어려운 사람은 ‘스마트폰 무소유’라는 기호 표현으로 인해 연락을 시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높은 보급률은 가족, 친구 등 사적 관계 뿐 아니라 직장동료들과도 끊임없이 연결, 우리는 친목도모용 단톡방, 업무용 단톡방, 친목도모와 업무의 경계가 모호한 단톡방 등 여러 개의 단톡방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최근 단톡방 내에서의 발언들이 문제가 되고 있듯이 단톡방에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업무용 단톡방에서는 공유 내용 뿐 아니라 소통하고자 하는 시간에서도 배려가 필요하다. 업무시간 외에 업무내용이 공유되면 업무시간이 연장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면서 몸은 퇴근했으나 업무와 연결돼 있는 ‘퇴근하지 못한 영혼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관행을 개선,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알려졌다. 2013년 독일정부는 업무 시간 이후 전화나 이메일 연락을 금지하는 지침을 발표했고, 2016년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소위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가 법제화 됐다. 폭스바겐 같은 기업은 아예 노사협약을 통해 근로시간 종료 30분 후부터 다음날 근무시간 30분 전까지 업무용 스마트폰의 이메일 기능이 멈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조사 결과 직장인 1000명 중 86.6%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거나 존중했다.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 비율도 85%나 된다고 한다. 일명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의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이기도 하다. 인사혁신처의 ‘2017년 공무원 근무혁신 지침’에서는 퇴근 후 메신저 등을 이용한 업무지시를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했고, 지난 3월 강원도청에서도 근무시간 이후 업무 연락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조직문화 개선 실천서약식을 개최했다고 한다.

업무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업무시간 외에는 직장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 이는 근로자들의 업무 생산성 향상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업무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허먼 멜빌이 지은 <필경사 바틀비>라는 소설 속에서 바틀비는 자꾸만 많아지는 업무지시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라는 소극적 거부가 아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라는 적극적 선택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반면 우리는 업무 시간 이후 또는 원하지 않는 단톡방에서 ‘연락받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라는 적극적 선택은 고사하고 ‘연락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는 소극적 거부조차 어려운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안미수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정책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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