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숙박업 평균 취업시간 가장 길어…제조업이 두 번째
주5일 근무제 이후 취업시간 줄었지만 감소 속도 둔화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 확대 가능성…시간제 근로자 양산 우려도

퇴근길에 건네는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는 농담은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그만큼 장시간 노동 현실이 구조적이고 예외없는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주7일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입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직장인의 현실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고용이 늘어나 실업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선진국에 비해 낮은 노동생산성도 어느 정도 개선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기간제·계약직의 처우 개선 등 고용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음식·숙박업 등 자영업자 취업시간 최장…대부분 업종 법정노동시간 초과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주당 평균취업시간은 43.0시간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2007년 47.1시간과 비교하면 10년간 4.1시간 줄어들었다.

업종별로 보면 법정 노동시간인 40시간을 초과하는 업종이 대부분이다.

2007년 48.2시간이었던 제조업의 주당 평균취업시간은 10년 동안 3시간 넘게 줄었지만 여전히 45.0시간에 머물러 있다.

자영업자가 많은 도소매·숙박음식점업은 주당 평균취업시간이 46.8시간으로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10년간 평균취업시간이 5시간 넘게 줄었지만 2007년 당시 이미 평균취업시간이 50시간을 넘은 탓에 여전히 장시간 근로에 방치돼있다.

반면 공무원들이 포함된 사업·개인·공공서비스의 주당 평균취업시간은 10년 전보다 4.4시간 줄어든 40시간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해가 진 뒤에는 작업이 어려운 탓에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짧은 농업·임업·어업은 주당 평균취업시간이 36.3시간이었다. 기계화 등 영향으로 10년 만에 취업시간이 5.2시간이 줄어드는 등 감소 속도도 빨랐다.

전체 산업에서 54시간 이상 일하는 취업자 비율은 20.2%로 취업자 5명 중 1명이나 됐다.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숙박음식업이 34.5%로 가장 높았고 사회간접자본·기타서비스업(21.0%), 전기·운수·통신·금융(19.9%) 등이 뒤를 이었다.

◇ 주5일제 자리 잡았다지만…‘저녁 있는 삶’은 남의 얘기

주당 취업시간의 감소는 기업 등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의 결과라기보다는 정책적 뒷받침에 기댄 측면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00년 2천512시간이었다가 2004년 2천392시간으로 처음으로 2천400시간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후 매년 감소해 2011년엔 2천90시간까지 줄었다.

이 기간에 노동시간이 감소한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2003년 8월 근로기준법 개정이 꼽힌다.

당시 법 개정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되는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됐다.

주5일 근무제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6단계에 걸쳐 도입됐고 제도가 적용되는 직장인은 2005년 30.2%에서 2013년 66.4%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주당 평균취업시간이 줄어든 데에는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경단녀)을 고용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장려한 영향도 있다.

지난해 주당 1∼17시간 취업자(127만3천명)는 4.1%, 주당 18∼35시간 취업자(320만6천명)는 15.5% 늘어나 전체 취업자 증가율(1.2%)보다 높았다.

그러나 수치와 달리 근로시간 단축을 실감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아직도 야근과 주말 근무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준수 때문에 회사가 야근을 인정해주지 않아 야근 수당을 챙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신속한 개발과 잦은 업데이트 때문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한 모바일게임업체 넷마블이 ‘구로의 등대’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넷마블의 사례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지난달 말 정부가 내수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금요일 조기 퇴근을 유도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평소에만 제시간에 퇴근시켜줘도 소비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를 적용받는 직장인 비율이 66% 수준에서 제자리걸음 하면서 취업시간 감소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1년에 약 한 시간씩 감소하던 주당 취업시간은 2014년 43.8시간, 2015년 43.6시간, 2016년 43.0시간으로 감소 속도가 둔화하고 있다.

◇ 근로시간 단축하면 일자리 늘어날까

전문가들은 국회가 추진하는 노동시간 단축안이 실현되면 단기적으로 줄어든 노동시간을 채우기 위해 일자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관리 감독이 뒷받침된다면 기업들이 생산을 급격하게 줄이지 않는 한 추가 고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 탓에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노동생산성도 노동시간 단축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상대적으로 선진국보다 떨어지는 것은 상사의 눈치 때문에 하는 야근 등 후진적인 조직 문화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이 긴 것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잔업 시간을 늘려서 일한다는 뜻”이라며 “노동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은 당연히 올라갈 것이고 고용창출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시간제 일자리 채용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의 질이 악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시간제 근로자가 늘어날 수도 있는데 통상 시간제 근로자는 임금수준 등에서 차별적 요소가 많다”라며 “이는 근로시간 단축 이후 제도의 문제로 또 풀어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제도가 바뀌어도 취업시간이 가장 긴 도소매·숙박음식점업 등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는다는 문제도 있다. 자영업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평균 취업시간은 줄어들 수 있지만, 업종별 양극화라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자영업은 대부분 6시간만 빼고 다 일을 하지만 외국은 오후 7∼8시 넘으면 문을 여는 곳이 거의 없다”라며 “우리는 자영업 근로시간이 길어 연간 근로시간이 길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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