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합창지휘박사

미국 LA를 방문하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많은 관광지가 있어서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지인도 만나고 방문 목적도 수행할 수 있어서 좋다. LA 코리아 타운은 세계에서 제일 크다. 한국인 누가 방문해도 불편 없이 먹고 자고 할 수 있다.

그 중 산타모니카 해변은 미국 이민 생활에 지친 동포들이 태평양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곤 했던 곳이라 한다. 필자도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의 동해가 보일듯한 환상에 젖어 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직선으로 달려가면 대한민국 동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울산 앞바다가 나온단다.

시간을 맞춰 간 것도 아니지만 때마침 빨간 태양을 삼키는 태평양의 석양(Sunset)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해질 시간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인들도 있고 가족들도 보였다. 필자를 포함한 여러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각각의 포즈와 사색의 표정으로 점점 물에 빠져 들어가며 찬란한 태양빛을 바다에 나눠주는 자연의 진귀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다.

여러나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거리의 악사를 이 산타모니카 해변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도시의 악사들이 소음과 싸워가며 음악을 들려주느라 애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해변의 이 악사는 자기의 음악에 집중하는 관객들에게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태양이 바닷속에 잠겨가는 낙조시간에 맞춰 노래를 하다가 태양이 완전 물에 잠긴 순간 노래를 끝내는, 자기 음악과 자연의 흐르는 시간을 딱 맞춰내는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냈다. 당연히 관객들의 박수와 모자 속에 동전세례가 쏟아졌다.

언제쯤이면 우리의 시조가락이나 판소리 한 대목이 이 해변에서 울려 퍼질까. 한민족 미국 이민사의 애환을 표현하며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에게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한국예술의 우월성을 자연스럽게 들려줄 수는 없을까. 한국의 어떤 음악가가 용기를 내어 세계 거리 악사의 대열에 합류하여 멋진 우리 음악을 들려주는 날이 올까. 이 곳에서 한참을 머무는 동안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천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합창지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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