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창엽 장검중학교 교장

언제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신입생들은 보석처럼 다듬어져 빛나기 위하여 학교 문을 들어선다. 봄날의 학교는 원석같은 영혼을 가진 신입생들이 교정에 북적거린다. 훈훈한 바람이 부는 봄이 왔다. 매화는 만개했고 목련꽃은 몽우리가 익어 터질 것 같다. 그런데 꽃이 필 무렵 꽃을 시샘하는 추위도 매섭고 차다. 꽃샘추위는 얄밉게도 이름은 아름다우나 일찍 피어난 꽃잎들을 괴롭힌다. 일찍 핀 꽃들은 간혹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누렇게 얼어버리기도 한다. 꽃잎들은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곱게 피었다가 수명을 다하고 떨어져야 미련이 없이 흙으로 돌아간다. 그 꽃들은 요절의 서러움을 하소연할 곳이 없다.

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봄날 꿈틀거리는 꽃잎같다. 이들은 이제 막 피려고 하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등 붉은 몽우리처럼 움츠려 있다. 세찬 바람을 겪어보지 못한 어린 생명이다. 이 어린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에 모여있다. 우리는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직자다. 교단을 지키는 모든 선생님들은 이 어린 학생들이 물과 바람과 햇빛을 충분히 받아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꽃샘추위가 되기도 한다. 비행을 저지른 학생에게 화풀이 하듯이 지도한다면 정당한 이유를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한 학생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 꽃샘추위는 다 피지도 못한 꽃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꽃샘추위가 되지 않으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 교사는 순순한 생각으로 교단에서 여린 꽃잎이 얼어버리듯 요절하게 만들지 않는가를 걱정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의 사용과 표현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생각이 언어화될 때 그 언어는 나의 생각이 녹아 있어야 한다. 생각과 언어의 선택에 거리가 있을수록 의사는 소통으로 흐르지 못하게 된다. 소통의 상대방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교육은 가슴으로 소통되어야 하는데 지시와 억압으로 통제되는 단계에 머물게 된다.

학생들과 소통에서 언어선택보다 표현의 단계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표정이다. 표정에는 언어화되지 못한 언어들이 의도하지 않게 숨어서 전달된다. 표정은 마음의 사악함이 없을 때 생각의 진실을 뒷받침해준다. 특히 학생지도와 같은 공적인 일에 사사로움이 개입돼 있으면 그것이 학생들에게 암묵적 분위기로 전달된다. 그러면 교육은 동영상의 일시정지 기능으로 전락하여 학생은 마음을 닫아버린다. 이것은 교육의 실패일 것이다. 우리는 실패를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지만 반복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 교육은 소통이 중요하다. 결국 교육은 학생과 소통이고 언어 선택과 표정이 모여서 전달되는 아름다운 예술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에 사악함이 없어야 된다. 마음이 사사롭거나, 사특하거나, 사악하다면 갈등이 잉태될 수밖에 없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에서 “시경 300편을 읽고 한마디로 정리하여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라고 했다. 즉 민간에서 전승돼오던 시 300여편을 모은 시경을 가리켜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주옥같은 시 모음집’이라고 극찬했다. 사실 사무사(思無邪)는 공자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니다. 시경의 한 편인 <노송(魯頌)> 경편에 나오는 사무사(思無邪)를 그대로 인용하였을 것이다. 이 시는 춘추시대 노나라 희공이 백성들의 밭을 피해 머나먼 목장(경)에서 말을 길렀음을 칭송한 노래였다. 키우던 말이 혹여 백성들의 곡식을 짓밟을까봐 목장을 먼 곳으로 조성했다는 시는 ‘덕정(德政)’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다. 또한 이 용어를 검색해 보니 1452년 즉위한 어린 임금 단종이 ‘사무사(思無邪)’의 뜻을 물었을 때 박팽년이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생각에 사사로움이 없는 바른 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모든 사물에서 바름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사물에서 바름을 얻을 수 있도록 학생들과 의사소통에 사악함이 없는 시경 300편이였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언어의 선택과 표정에 품격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학교의 선생님들은 지성인의 품격이 베여있어 사무사(思無邪) 상태로 교직을 수행해 주면 나라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교직은 사무사(思無邪)의 세계이여야 한다.

여창엽 장검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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