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겨울 넘어 잔인한 달 4월 지나면
국민을 위한 정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찬란한 5월 맞기 위해 참된 주권행사를

▲ 김주홍 울산대 교수·국제관계학

토마스 엘리엇(Thomas S. Elliot)은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대지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잠들어있는 뿌리를 봄비로 흔들어 깨운다”고 읊었다. 겨울이 추한 대지를 망각의 눈(雪)으로 덮어주며 자그마한 생명이나마 뿌리 속에 보존했기에 오히려 따뜻했고, 그렇기 때문에 4월의 황무지에서 피어나는 라일락과 히야신스가 더욱 처연했으리라.

한국 정치의 올 4월은 토마스 엘리엇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추한 정치의 민낯을 촛불로 뜨겁게 밝히고 보낸 겨울이 지난 뒷자리! 그 4월은 지나간 기억과 미래의 기대가 뒤섞이며 한국 정치의 가능성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그렇게 한국정치의 올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 있다.

전(前) 대통령이 탄핵심판으로 파면된 뒷자리를 서로 차지해 보겠다는 욕망이 맞부딪히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 한국정치의 미래가능성이 보장되는 것인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 그 속에서 하나씩 확정되는 소위 대선후보들, 그리고 난무하는 알 수 없는 공약(公約)들…. 그저 이렇게 쏠리고 저렇게 몰리면서 그렇게 올 4월이 시작되었다.

이제 각 정당에서 대선후보가 확정되고 나면 4월16일까지 대선후보자 등록이 마감될 것이다. 서로 치열하게 치고받고, 말이 되던 안되던 각종 공약(空約)을 남발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대선후보들에게 우리는 또 다시 기약 없는 한 표를 던져주고 그 중에 뽑힌 대통령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 그가 누구이던지 그 이전 대통령보다 잘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가장 잔인한 달 4월을 뒤로 하고 5월의 가운데에 있게 될 것이다.

‘가장 잔인한 달 4월’이 지나간 자리에 들어선 5월은 포근하고 따사로울까? 지난 겨울의 혼돈과 대립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은 민심을 포근하게 보듬어 안고 민생을 챙기며 국민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를 넘어서는 ‘국민을 위한 정부’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 대다수의 기대와는 달리 아마도 지금보다 더 심각한 대립과 분열 그리고 혼란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적폐청산, 더욱이 ‘분노를 기반으로 한 정의’의 이름으로 단행되는 그것은 현재 우리 모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민생이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한다. IMF 사태 때보다 몇 배가 더 어렵다는 현재의 한국경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폭발직전의 가계부채, 그리고 청년실업과 경기침체 등등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야 한다. 거창한 4차산업혁명이나 수출 확대 등은 아직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북핵문제, 사드(THAAD)보복과 중국문제, 한·미 동맹문제와 한·미 경제관계, 한·일 관계 등 산적한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큰 그림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적극적으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정파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상태로 끝까지 가게 되면 5월이 되어도 가장 잔인한 4월을 보내고 맞이하는 보람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5월9일에는 우리 모두가 투표장에 가야 한다. 주인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스스로 살길을 찾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물론 그 전에 누가 무슨 공약을 하는지, 그것들이 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국가사회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어떤지, 그리고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등등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따사로운 5월의 햇살 속에 ‘장미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올 봄 4월이 가장 잔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주홍 울산대 교수·국제관계학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