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경 울산장애인인권포럼 사무국장

보통 ‘○○○날’이라 하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과 같이 누군가에게 감사하거나 의미가 있는 날이다. 3·1, 4·3, 5·18, 6·25, 6·29 처럼 특별히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날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밸런타인데이, 빼뻬로데이 같은 날이 매년 돌아온다. 4·20 장애인의 날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날도,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있음을 기념할 날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할 날도 아닌 과연 어떤 의미의 날인지 알 수 없다. 사실 장애인의 날이 4월20일이 된 것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 ‘곡우’라는 절기일 뿐이다. 일년 중 가장 비가 올 확률이 적은 날이라 하여 집이나 시설에 갇혀 지내는 장애인들을 이 날 하루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 지인을 통해 “사고로 장애를 입자 어린 딸이 매년 장애인의 날이 되면 선물을 해주다가 철이 들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선물을 주지 않더라고, 또 왜 선물을 주지 않게 되었는지를 아직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아이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게 된 것인지 필자 역시 참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장애인의 날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은 무엇을 축하한다는 것일까? 장애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장애인이 모인 것을 축하한다는 것인가? 등의 삐딱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날을 정할 때는 장애인의 이동편의가 지금처럼 갖추어지지 않아 장애인이 일년에 한두번씩 외출하는 정도라 비가 오면 힘들다는 것을 배려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2000년대 이후로 사회적 환경이나 장애인당사자의 의식이 많이 변했다. 또 지구 환경의 변화로 최근 몇년 4월20일은 비가 자주 왔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사회는 관광버스를 동원해 모든 유형의 장애인을 한 곳에 모으고 기념행사를 한다. 그리고는 장애인들을 향해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 장애를 극복해야 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국가와 시가 장애인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장애인의 날’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날짜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날이라고 장애인을 차 때기로 동원하고 도시락을 줄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사회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생활하기 위한 정책을 선포하고, 비장애인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한해의 장애인 복지와 인권정책 선포의 날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곧 4월20일 장애인의 날이 다가온다. 언론은 앞 다투어 장애인 관련 방송을 내보낼 것이고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을 찾아 상을 줄 것이다. 여전히 장애인들은 관람석에 앉아 앞에서 내빈들이 던지는 위로 내지는 격려의 말을 들을 것이고 한 편에서는 장애인 차별철폐를 외쳐 될 것이다. 그리고는 도시락 하나에, 선물 하나에 아수라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런 생각을 해본다.

박미경 울산장애인인권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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