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 지연으로 선거구 미획정…죄형법정주의상 처벌 공백”
20대 총선 입건 금품사범 600여명 중 일부 ‘죄짓고도 무죄’ 되나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연초부터 두 달간 이어진 초유의 ‘선거구 실종’ 기간 동안 표심을 노린 불법 기부가 벌어졌지만 이를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번 판결은 같은 시기 유사 범죄를 저지른 선거사범들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검찰이 20대 총선에서 입건한 금품선거 사범은 656명이며 이 중 일부는 ‘죄를 짓고도 처벌을 피해 가는’ 불공정한 결과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13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미시의원 강승수(51)씨의 상고심에서 강씨에게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씨는 2016년 2월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 출마 예정자 A씨를 위해 선거구민과 지인 약 60명에게 70만원 상당의 선물세트를 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직선거법 제113조(후보자 등의 기부행위 제한)는 국회의원 출마 예정자가 당해 선거구 구민이나 구민과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 기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제115조(제삼자의 기부행위 제한)에 따라 제3자도 출마 예정자를 위한 기부가 금지된다.

그러나 1, 2심은 당시 국회의 선거구 획정이 석 달간 미뤄지며 법에 적힌 ‘당해 선거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점을 들어 강씨의 이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2심은 “종전까지 금지되던 기부행위가 일시적 선거구 공백 기간이라 처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 것은 국회의 입법지연에 의한 것으로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에 쓰인 당해 선거구에 새로 획정될 선거구도 포함된다고 주장했지만 2심은 “기부 당시 상대방이 어느 선거구 사람인지 불명확한데도 새 획정 선거구를 처벌 기준으로 삼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며 부당하고 위험하다”고 봤다.

대법원도 마찬가지 판단을 했다. 결국, 국회의 늑장 대응이 사법 불공정이라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유죄 요건에 선거구의 존재가 전제된 기부행위 위반죄에만 적용될 수 있다”며 “매수나 이해유도죄, 선거운동 관련 범죄 등 다른 공직선거법 위반은 선거구 효력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된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헌재는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큰 점을 문제 삼아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하고 기존 선거구를 2015년 12월 31일까지만 유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국회는 정쟁을 거듭하며 해를 넘겨서까지 획정 안을 도출하지 못했고, 결국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선거를 한달 여 앞둔 지난해 3월 3일 새 선거구가 확정될 때까지 ‘깜깜이’ 선거운동을 치러야 했다.

대법원은 다만, 강씨가 2016년 1월∼2월 자신의 시의원 선거구민 등 수십 명에게 122만여원 상당의 선물세트를 기부한 별도의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해 원심의 벌금형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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