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해설사의 비망록-울산여지승람]28)옥류천 이야기길

▲ 마골산 ‘한골짝’에서 발원하여 남목으로 흘러내리는 옥류천(玉流川)은 남목의 별칭인 남옥(南玉)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옥류천과 마골산 일대의 산길들을 아울러서 ‘옥류천 이야기길’이 조성되어 있다.

두꺼비바위·거북바위·해골바위 등
도처에 널린 온갖 형상의 기암들
바위 하나하나 전설 서려있어
울산서 가장 오래된 사찰 동축사
시문화재로 지정되는 불당골 마애불
해맞이 명소로도 유명한 관일대
사시사철 쉼없이 흐르는 옥류천
동구 소리9경 중 3경이 여기에

마골산(297m)은 울산 동구의 주산이다. 마골산이 부챗살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 남목이다. 조선조 때 이 마을을 중심으로 대단위 목장이 운영되었기에 마을 이름이 南木에서 南牧으로 바뀌었다. 목장 둘레를 돌로 쌓은 남목마성(南牧馬城)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있다.

마골산 ‘한골짝’에서 발원하여 남목으로 흘러내리는 옥류천(玉流川)은 남목의 별칭인 남옥(南玉)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옥류천과 마골산 일대의 산길들을 아울러서 ‘옥류천 이야기길’을 조성한 것은 5년여 전의 일이다. ‘동축사길’ ‘소나무숲길’ ‘소망길’이라 이름 붙은 3개의 코스와 ‘순환길’이 있다.

▲ 관일대

마골(麻骨)은 삼(麻) 껍질을 벗겨낸 흰색의 삼대를 뜻하는 한자어다. 산에 줄지어 있는 많은 바위들이 마골처럼 보이므로 이름을 마골산이라 부른다고 학성지에 나와 있다. 그런 만큼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두꺼비바위가 세군데, 거북바위가 두 곳에 있는가 하면, 알바위, 남근암, 여근암, 부부암, 가족바위도 있다. 바위가 가장 많은 길은 소망길인데 해골바위, 장적암(掌跡岩), 휘양바위, 공부암, 송곳바위, 촛대바위 등의 기암들이 즐비하다.

남목과 나는 예사 인연이 아니다. 40여 년 전, 남목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 시 결혼을 하고 학교 옆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5000원짜리 단칸 월세방의 빈한한 살림에 쪼들린 탓인지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았지만, 15년 전 교감으로 승진하여 이 학교에 다시 근무하던 시절에 남목은 아름다운 곳으로 각인되었다.

▲ 해골바위

높지도 깊지도 않은 마골산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까닭은 바위 하나하나마다 전설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구청이 펴낸 ‘옥류천 이야기길’에 옹골차게 엮어져있는 이야기는 쉰 꼭지가 넘는다.

이야기길의 화룡점정은 동축사다. 위치에 대한 이론이 있긴 하지만, 573년(진흥왕 34년)에 처음 건립된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전해오며 창건 설화부터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해설사 옛 동료들과 함께 힘들게 계단을 올라 동축사에 들렸더니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었다. 15년 전 5월, 스님이 계단을 빗질한 자국위에 떨어져 있던 개암나무 통통한 꽃을 한 움큼 주워서 법당에 올렸던 예쁜 내 마음도, 빗질하던 스님의 정갈한 마음도 이제는 없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사시 기도의 불경 소리에 마음을 가다듬고 절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더니 구불구불한 소나무 군락이 나타났다. 그 어떤 분재들이 이보다 아름다우랴.

▲ 마애여래불상- 마골(麻骨)은 삼(麻) 껍질을 벗겨낸 흰색의 삼대를 뜻하는 한자어다. 산에 줄지어 있는 많은 바위들이 마골처럼 보이므로 이름을 마골산이라 부른다. (위에서부터)관일대, 해골바위, 불당골 마애여래불상.

바위들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은 동축사 뒤편에 있는 관일대(觀日臺)이다. 두꺼비 모양의 바위들이 모여 있어 섬암(蟾岩)이라고도 한다. 방어진12경에 섬암모운(蟾岩暮雲), 동면8경에는 섬암상풍(蟾岩霜楓)으로 불리는 경승지로 해맞이 명소다. 1829년 무렵 울산목장의 감목관 원유영은 부상효채(扶桑曉彩)란 명필을 관일대에 음각으로 남겨 일출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나타냈다.

원유영은 미포만의 낙화암에도 한시를 남겼다. 경치가 빼어나 동면8경에 드는 낙화암은 현대중공업 건설로 사라졌지만 시가 새겨진 바위의 일부는 현대중공업 영빈관 옆에, 또 하나의 바위는 개인 저택에 옮겨져 있는데 머잖아 시민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소망길의 ‘불당골’에서 보았던 마애여래불상이 울산광역시 문화재로 지정된다는 것이다. 화강암에 새겨진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많이 훼손된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울산에 있는 마애불은 이 불상과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둘 뿐이다.

짝지와 함께 옥류천을 찾았다. 동축사길로 올라가서 소망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들머리인 ‘물방골’에 들면 유하 홍세태의 한시와 남목마성을 상징하는 철제 말(馬) 조형물이 환영을 한다. 홍세태는 1719년부터 2년 동안 남목에서 감목관으로 지내면서 240여수의 시를 남겼다.

“옥류천 길이 너무 좋아서 이사를 갈 수가 없어요.”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이다. 산책로가 정주여건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일까, 100세 시대가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 이선옥 수필가·전 문화관광해설사

옥류천의 길이는 짧지만 옥 같은 물이 사철 쉼 없이 흘러내린다. 바위와 모래가 물소리를 더욱 아름답게 해 준다. ‘동구 소리9경’ 중 3경이 여기에 있다. 옥류천 계곡 물 흐르는 소리, 동축사 새벽종소리와 마골산 숲 바람소리가 그것이다. 맑은 물이 소나무를 길러내고, 소나무는 개천을 더욱 맑게 한다. 자연의 조화다. 그냥 ‘한눈에 반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39년 전, 28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가재 잡이 소년들도 이 아름다운 숲의 유혹에 길을 잃고 그 많은 날을 산 속에서 헤맸나보다.

오가는 사람끼리 부딪힐 정도로 비좁은 오솔길은 언제 걸어도 예쁘고 정겹다. 계곡 입구부터 시작된 천변의 텃밭이 거의 발원지까지 늘어서 있어 여간 신기하고 우습지 않다. 부지런한 주민은 꿩 먹고 알 먹는 재미를 보는 셈이다. 예부터 약초랑 송이버섯이 많이 자라는 마골산의 정기를 머금은 농작물이니 보약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도토리 약수터’에서 갈증을 풀고 동축산 정상의 염포정에서 숨을 골랐다. 기암괴석을 구경하다보니 하산길은 금방이었다. 근심 걱정과 욕심일랑 옥류천에 흘려보내고 옛날을 회억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이선옥 수필가·전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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