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봄이 왔다. 지난겨울 그렇게 많이 내렸던 눈도 이제 녹아 내리고 있다.  전통의 농가월령가에는 이른 봄에 달과 좀생이를 쳐다보고 올 한해가 풍년이 될지 흉년이 될지를 점을 치고, 반가운 봄바람에 마음의 문이 열리고, 겨우내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의 싹을 틔운다고 노래 부른다.  이어서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고, 산비둘기 소리나니 버들 빛 새로우며, 보습쟁기 차려놓고 봄갈이를 하면서, 살진 밭 골라서 봄보리 많이 심고, 목화 밭 갈고 담배 모 일찍 심어 제 때를 기다리니, 이 얼마나 좋을시며, 과일나무 뽕나무 뿌리 상하지 않게 비오는 날 심어 수입을 더 하리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솔가지 찍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담장도 덧쌓고, 개천도 쳐 올리며, 안팎에 쌓인 검불 깨끗이 쓸어 내여 불놓아 재 받아 거름을 보태고, 또 이산 저산 뒤져가며 귀한 약재 캐서 가난한 농촌에 쥔 것 없어도 값진 약 쓸 수 있어 얼마나 좋을고 하며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서 흘러가는 세월에 그런대로 여유로움을 흥얼거린다.  이 노래를 들으면 막히고 답답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은 열리는 기분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여유를 찾아 인생살이를 즐기는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어떤 이는 이 농가월령가를 마치 감기기운에서 풀려난 느낌이고, 옷고름이풀리고 속적삼이 벗겨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살속으로 기어드는 듯한 찬 느낌의 봄바람이 몸속 가득히 차는 듯한 노래 소리라고 표현한다. 또 어떤 이는 나뭇가지마다 속눈썹 트는 환희가 겨우내 깊이 숨었던 냇물소리가 귀뺨 가까이에서 청랑하게 방울소리로 울리는 그런 계절의 노래라고 말한다.  이같은 이른 봄에 우리는 진정 봄을 기다리고 있는가. 봄은 우리에게 소중한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이 봄의 가르침을 모르고서야 어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겠는가.  두꺼운 얼음밑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고는 그 삭막하던 겨울이 지나갔음을 안다. 겨우내 얼었던 흙더미를 뚫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고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낀다. 죽은 것 같은나무가지에 파랗게 돋아나는 새 잎을 보고는 부활의 의미를 느낀다. 부활은 죽음을 초월하여 당장의 고통을 즐겁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런 봄날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우리는 삼라만상이 풍요롭게 될 것임을 알고, 또 양지바른 곳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봄볕을 받아보면 온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사람사는 곳에 온정이 없다면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우리 모두는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이제 봄이 오니 "프라하의 봄"이 생각난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 운동지도자 두브체크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프라하의 봄을 불어넣었다. 봄은곧 자유의 이미지가 있다. 그는 "프라하에 자유가 올 것인가"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프라하의 봄에 비유하여 1980년에는 "서울의 봄"이라는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구호는 아직도 우리의 귀에 쟁쟁한데, 그 때와 같은 봄이 다시 왔어도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간다. 어느 누가 봄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가.  봄이 와도 살림살이가 풀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기업하기도 점점 더 어렵고 실업자는 늘어만 간다고 한다. 봄은 왔어도 봄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돌아가는 생활형편에서 봄의 소리는 진정 무엇인지. 우리 모두 깊은 사색의 산책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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