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등 기념판 찾기 나서…군부정권 추적 포기 요구

▲ 사라진 혁명 기념판(왼쪽)과 새 금속판(오른쪽).사진출처=방콕포스트 홈페이지

태국 절대왕정 폐지의 계기가 된 무혈 혁명을 기념해 설치된 ‘혁명 기념판’ 도난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설치된 지 81년이나 된 역사적 기념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가운데 사건 현장 근처의 폐쇄회로TV 카메라가 철거된 것으로 드러났고, 군부 정권과 경찰은 사건 조사를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시민 운동가들의 문제 제기를 억누르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20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일 방콕 시내 두짓 궁전 박물관 앞 국왕 광장 바닥에 설치됐던 지름 30㎝의 ‘민주화 혁명 기념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국왕에 충성을 다하라는 내용의 다른 금속판이 부착됐다.

사라진 혁명 기념판은 1932년 태국이 절대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계기가 된 무혈 혁명을 기념해 1936년에 설치된 역사적 기념물이다.

혁명 당시 인민당 지도자가 절대왕정 종식을 선언한 장소에 설치된 기념 판에는 “1932년 6월 24일 새벽, 인민당은 이 자리에서 국가의 번영을 위한 헌법을 탄생시켰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혁명 기념 판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교 삼신(三神)과 국가, 가족을 믿고 국왕에 충성하며 스스로 국가 번영의 엔진이 되도록 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문구의 새 금속판이 설치됐다.

이와 관련, 태국 민주화 운동 단체인 새민주운동(NDM) 등은 입헌군주제를 부정하는 극단 성향의 왕당파들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의 하나로 기념판을 파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당국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라진 기념 판을 찾아달라는 청원을 제기했고, 방콕 시 당국에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설치된 CCTV 화면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시 당국은 교통 신호 개선 작업을 위해 광장에 설치됐던 11대의 CCTV 카메라가 사건 발생 전날인 지난달 31일 철거돼 사건 발생 영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욱이 시는 자체적으로 카메라 철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누가 카메라가 철거를 지시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유타판 미차이 방콕시장 비서는 “교통 신호 개선을 위한 공사가 진행됐는데, 이 때문에 교통 신호등 위에 설치됐던 CCTV가 철거된 것”이라며 “시청은 CCTV 철거 사실을 통보받았을 뿐이다. 어떤 기관이 철거 지시를 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태국 군부 정권과 수사당국의 태도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태국 정부 대변인인 피야퐁 클린판은 “새로운 헌법이 반포돼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에 혼란과 무질서를 유발할 수 있는 일은 중단되어야 한다”며 시민단체의 기념판 추적 작업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이어 “국가적 화해와 화합을 위해 모든 정치세력이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또 시민단체 수사 요청을 묵살해온 경찰은 최근 기념 판 도난 사건을 이유로 한 광장 집회를 금지한 데 이어, 지난 18일에는 사건 현장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새로운 동판을 촬영한 시민들에게는 사진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념 판 도난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군인들에게 체포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