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강문철作(40.9×31.8cm, Acrylic on canvas) :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은 겨우내 움츠러 들었던 몸과 마음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생명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봄은 생명의 화려한 축제다.

가슴 저리도록 기다린 봄은
열병처럼 금세 왔다간 사라진다
온 세상 형형색색이 물러간 자리
진한 초록속에 장미가 오고 있다
온통 붉고 더 시끄러운 장미대선
겹겹 조화로운 마법의 장미였으면

봄, 찰나의 이름이다. 부지불식간에 황토색 천지를 형광의 물결로 변모시킨다. 그 조화는 누구의 손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일까. 봄은 우리를 애태운다.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매서운 바람 뒤에야 온다. 쑥덕쑥덕 거리며 온다. 그만큼 조심스럽다. 봄바람은 예사롭지 않다. 심란하다. 마음 둘 곳을 잃은 이들을 집밖으로 불러낸다. 남녀노소가 봄 햇살에 몸을 맡긴다. 몸이 익어 가는 줄 모르고 들뜬 들녘 가운데서 한가롭기만 하다.

그런 봄이 무섭다. 벚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어디든 숨어들고 싶다. 미치도록 산만하게 만드는 묘약이다. 그런 나를 위로하는 것은 매서운 비바람이다. 더 거세게 몰아치길 바라는 못된 심성이 내겐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비바람이 몰아쳤다. 제 몸을 흔들어 세상의 시끄러움을 잠재우는 주술이다.

‘벚꽃은 제 부피만큼 무겁고 시끄럽다./ 밤 벚꽃놀이는 한가한 부피의 심장을 길 위에 내어 놓는 일/ 그때마다 비바람이 함께 요란하다/ 벚꽃이 밤 몰래 만개하는 것은 제 부피를 벗기 위해/ 몸서리치며 정신을 흔드는 일’

<졸시, ‘밤 벚꽃놀이’ 일부>벚꽃놀이 다녀오셨나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주문을 걸어온다. 천지가 벚꽃인데 어딜 또 가야 하나. 어딜 꼭 다녀와야만 하고, 다녀오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이상한 봄세상이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떠밀며 거리로 내몰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지랖이다. 벚꽃명소의 관계자들은 벚꽃의 개화시기를 예측하고 벚꽃축제를 기획하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할까. 날짜를 앞서 잡아도, 뒤늦게 잡아도 낭패다. 적당한 날을 잡은 해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그 사이 축제에 모여드는 상춘객들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다. 발 디딜 틈 없는 인파가 벚꽃처럼 만개한다. 꼼짝없이 차 안이다. 집밖을 나갔다는 것, 어디를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기 때문일까. 그것을 즐기는 것이 놀이고 여행이라면 반론의 여지는 없다. 다녀왔음으로.

벚꽃은 잠들지 못한다. 밤마다 화려한 조명을 입고 알아들을 수 없는 세상의 혼잡한 소리와 함께 한다. 그래서 밤바람에 제 몸을 흔들며 부피를 줄여나간다. 피크까지 같이 도달하기 위해 더 몸을 흔드는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의 고요를 위해.

그래서 밤 벚꽃놀이는 떠도는 마음들이/ 밤꽃의 환상에 꽂혀 벚꽃의 부피를 가볍게 하는 일/ 벚꽃이 떠나니 무서운 봄이 다가고 있다.

<졸시, ‘밤 벚꽃놀이’ 일부>언제 그랬느냐는 듯 세상이 조용하다. 눈꽃세상이 사라진 따스한 봄날, 초록만이 가득하다. 봄은 춥다. 꽃샘바람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 춥다와 따습다를 반복한다. 환절기다. 무겁거나 가볍다. 무거운 듯 가볍다가 가벼운 듯 무겁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봄의 생태는 당신의 마음과 같다. 그래서 또 무섭다. 바람의 속성이 여럿이듯 어느 누이가 심란한 마음에 야반도주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봄은 짧다. 짧은 만큼 여운 또한 짧다. 햇살을 향해 길게 목을 내민 목련은 다음 날이면 어제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다. 몽우리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지고 없다. 생동은 생동하는 만큼 짧다. 영원한 봄이 없듯 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또 잊힌 봄을 맞이할 것이다.

이처럼 혼란한 봄 나기에 이력이 생길만도 한데, 봄은 열병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가슴 저리도록 기다렸지만, 저린 만큼 빨리 간다. 붙잡히지 않는 당신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봄을 기다릴 것이다. 무섭고 무겁고 시끄러운 봄이지만 놓칠 수 없다. 이젠 초록이다. 형형색색을 모두 삼켰다. 진한 초록이다. 그렇기에 당신을 읽을 수 없다. 느낄 뿐이다. 어제의 느낌이 오늘의 느낌이 아니기에 당신을 보내고 또 기다린다.
 

▲ 강문철씨

무서운 봄이 끝자락에 도달하니 잔인한 장미가 오고 있다. 장미대선으로 온통 붉다. 더 시끄럽다. 최후의 장미였으면 좋겠다. 장미가시처럼 단단한 결심을 할 때다. 며칠 후 피어날 승자의 장미가 분노의 장미가 아니라, 여러 겹의 조화로 번져나가는 마법의 장미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온전히 잊힐 봄을 보내고 말 것이다.

■ 강문철씨는
·홍익대 미술대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14회, 초대개인전 3회.
·공인미술관 관장·(사)경남박물관협의회 이사 역임
·한국미협 회원, 울산사생회 초대회장
·가다갤러리 대표,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 김익경씨

■ 김익경씨는
·시인
·2011년 동리목월 등단
·수요시포럼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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