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발 ‘건강 격차’ 우려

▲ 미세먼지 경각심 커지면서 관련 용품 판매가 증가되고 있다. 8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고객들이 미세먼지 관련 마스크 등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4만 원을 주고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 미세먼지용 마스크 34장을 샀는데, 가족 네 명이 나눠 쓰면 열흘도 채 못 쓰네요.”(직장인 신 모 씨·43·서울 본동)

“택시 기사께 미세먼지가 심한데 왜 마스크를 안 쓰시냐고 물었더니, ’3천 원대 마스크를 사도 한 달 약 10만 원이 드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되물었다.” (직장인 김 모 씨·51·서울 대치동)

짙은 미세먼지는 한국인의 기관지와 폐 뿐 아니라 이처럼 가계 살림살이까지 옥죄고 있다.

미세먼지 노출을 최대한 줄이려면 최소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대의 공기청정기가 필요하지만, 경제 여력이 크지 않은 서민들은 오늘도 여전히 수십~수 천 원짜리 마스크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수개월, 수년간 누적되면 결국 빈부에 따른 ‘호흡기 건강 격차’가 현실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 마스크·공기청정기 매출 5~8배 급증

그다지 달가운 ‘특수’는 아니지만, 최근 미세먼지 관련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소비 부진’에 시달리는 유통업계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9일 편의점 CU(씨유)에 따르면 4월 1일부터 이달 7일까지 마스크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4%나 불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수준까지 치솟은 지난 주말(5월 6~7일)에는 마스크 매출이 1년 전의 5배 이상(446%)으로 급증했다.

이마트에서도 이달 1~7일 마스크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102.3%)까지 뛰었다.

온라인쇼핑 시장에서도 마스크 수요는 ‘폭발적’이다.

티몬에서 4월 한 달 동안 ‘KF80’과 같은 인증 마스크의 매출은 작년 4월의 2.1배로, 5월 들어서는 7일까지 지난해 동기의 7.6배(660%)로 증가했다.

마스크뿐 아니라 공기청정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에서 지난달 공기청정기 매출은 1년 전의 2.5배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이마트와 현대백화점의 공기청정기 매출도 각각 233%, 56.8% 급증했다.

5월 들어 공기청정기 ‘특수’는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 1~7일 기준으로 롯데하이마트의 공기청정기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의 5.1배(410%), 이마트는 4배 이상(349%)까지 각각 치솟았다.

온라인쇼핑사이트 11번가에서도 4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 공기청정기 매출은 전년 동기의 3배를 웃돌았다. 특히 미세먼지 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주말(5월 6~7일) 이틀 동안 하루 평균 거래액은 4월 1일~5월 5일 사이 일(日) 평균의 7배를 넘어섰다.

◇ 미세먼지 차단 의문스러운 수십~수 백 원짜리 마스크도 ‘불티’

하지만 미세먼지 관련 소비 행태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경제력에 따라 대응의 질(質)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포털사이트 등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검색하면, 수십 원 부터 수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마스크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검증된 ‘KF80’, ‘KF94’ 등 인증 제품의 경우 최소 2천 원 안팎은 줘야 살 수 있다. 가족 전체가 아닌 개인으로만 따져도, 하루 한 개씩 사용한다면 한 달 6만 원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수 천 원짜리 마스크가 일회용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상당수 소비자가 아까운 마음에 이틀, 사흘 정도 더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부담 탓에 제대로 미세먼지를 거를 수 없는 일반 마스크를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온라인쇼핑사이트 티몬에 따르면 4월 한 달간 ‘비(非) 인증’ 마스크 매출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10% 증가했다. 인증마스크 증가율(660%)과 비교하면 훨씬 낮지만, 싼값에 끌려 미세먼지를 막지 못하는 마스크를 사서 쓰는 사람들도 꽤 늘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일반 마스크 중에서는 1개 가격이 20원에 불과한 제품도 있다.

티몬 관계자는 “인증 없는 일반 마스크 가운데 약 15% 정도가 중국산”이라며 “미세먼지에 대한 효과가 검증되지 않아 매출 비중은 크지 않지만,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수요는 꾸준히 있다”고 전했다.

서민들은 고가의 공기청정기를 대신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기 정화’ 식물을 들여놓기도 한다. 실제로 티몬에서는 지난달 공기 정화 식물 매출이 1년 전보다 13% 불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차량용 필터를 창문에 붙여 미세먼지를 막는 법’ 등의 저렴한 자구책이 공유되는 현실도 같은 맥락이다.

◇ 18만 원짜리 마스크도 한 백화점서 하루 10개 이상 팔려

전문가들은 보다 ‘확실한’ 미세먼지 대책으로 ‘공기청정기’ 사용을 권하지만, 서민 입장에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요즈음 독특한 디자인 등으로 인기를 끄는 ‘LG전자 퓨리케어(AS281DAW)’ 공기청정기의 가격은 온라인에서 96만~190만 원 수준이고, 티몬에서 올해 들어 가장 많이 팔린 공기청정기 ‘삼성 블루스카이 5000(AX60K5580WFD)’의 가격대도 40만 원대 후반이다.

물론 20만~30만 원대 보급형 저가 공기청정기도 있지만, 고가 제품들과 어느 정도 정화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게 유통업체들의 설명이다.

한 달 2만~5만 원 정도의 렌털료(임대료)를 내고 공기청정기를 빌려 쓰는 방법도 있지만, 하루 이틀 사용할 제품이 아닌 만큼 수년 동안 임대하면 이 비용 역시 수백만 원에 이른다.

더구나 최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한 가정에서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럴 경우 ‘맑은 공기’를 위한 지출 규모는 두 세배로 뛴다.

마스크 하나의 가격이 거의 저가형 공기청정기와 맞먹는 제품도 있다.

갤러리아 명품관이 지난 3월 선보인 영국산 마스크 ‘프레카 플로우’의 가격(교체형 필터 2개 포함)은 무려 18만6천 원에 이른다. 가격은 거의 20만 원 수준이지만, 최근 미세먼지 경보가 잦아지면서 하루 10개 이상 꾸준히 팔리고 있다는 게 갤러리아측의 설명이다.

미국산 ‘보그 마스크’의 가격도 일반 미세먼지 차단 일회용 마스크의 10배가 넘는 2만9천500원이다. 일회용 마스크와 달리 하루 2시간씩, 최대 6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세척을 통해 재사용까지 가능하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최근 하루 평균 300만 원어치 이상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진행한 다이슨·블루에어 브랜드의 ‘프리미엄’급 공기청정기 할인 행사도 큰 호응을 얻었다.

다이슨, 블루에어 480i 등의 주요 제품 가격대가 70만~80만원대에 이르렀지만, 수요가 몰린 덕에 공기청정기를 포함한 4월 롯데백화점 가전 부문 매출이 작년 같은 달에 비해 29.4%나 급증했다.

무려 620만 원대 가격의 독일 ‘나노드론’ 공기청정기의 주문량도 30% 이상 늘었고, 260만 원짜리인 아이큐에어의 ‘헬스 프로 250’ 모델은 백화점 모든 매장에서 동나 주문하면 평균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할 정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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