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대운산(하)

▲ 대운산2봉에서 바라 본 문수산과 울산시가지. 날씨가 좋은 날은 동해바다와 대마도가 조망이 가능하고, 울산시가지, 영남알프스의 동쪽사면의 산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5월부터 철쭉 만발, 능선따라 분홍빛 물결
상대봉 앞 전망대서 철쭉축제 열려

대운산 제2봉에 서면 울산시가지 한눈에
날씨 좋은날은 대마도까지 조망 가능

하산길 내원골에 접어들면
빈대소 전설 품은 ‘내원암’
득남 소망 담은 ‘아들바위’만날수 있어

대운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방법은 두 갈래 길이 있다. 정상에서 진행방향(직진)은 불광산이나 시명산, 장안사, 박치골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로이고, 오른쪽(북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대운산 자연휴양림이나 대운산 제2봉으로 내려가는 등로이다. 오른쪽 나무계단을 따라 100여m 정도 내려오면 헬기장 앞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730m봉을 지나 대운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는 등로이고, 오른쪽은 대운산 제2봉으로 향하는 등로이다.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선다. 지난 4월에는 진달래가 피었더니, 이번 달부터는 철쭉이 만발하여 철쭉축제까지 열리는 상대봉(668m) 앞 전망대에 도착한다.

▲ 대운산 도통골의 아름다운 소(沼)와 담(潭).

철쭉꽃은 5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5월 말부터 6월 초순까지는 주로 해발 1000m 이상인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등지에서 핀다. 철쭉에 관한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수로부인은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성덕왕(702~737)때 강릉 태수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가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낭떠러지 꼭대기에 활짝 핀 철쭉꽃을 보고 꺾어서 가지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가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꽃 중에서 철쭉꽃을 미인에 비유한 것이다. 이름 역시 꽃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하여 머물거릴 척(躑), 머물거릴 촉(蠋)을 나란히 붙여 철촉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철쭉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철쭉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고사하지 아니하고 높은 산 능선, 계곡 등에서 자생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철쭉에는 글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있어 초식 짐승들이 잘 먹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철쭉 군락을 지나면서부터 길은 곳곳에 나무갑판이 깔려있어 걷기가 한결 편하다. 갑판이 설치되기 전 봄철에 이곳을 걸으면 신발이 흙으로 뒤범벅되는 구간이다. 전망대를 지나 다시 10여분 뒤 대운산 제2봉 안부 갈림길에 도착한다. 진행방향 직진(나무계단이 설치돼 있음)은 제2봉으로 향하는 등로이고, 오른쪽은 내원골을 따라 하산하는 등로이다.

진행방향 나무계단을 따라 7~8분 정도 오르면 대운산 제2봉(670m)에 올라선다. 이 곳 역시 정상은 나무갑판이 깔려있다. 날씨가 좋은날은 동해바다와 대마도가 조망이 가능하고, 울산시가지, 영남알프스의 동쪽사면의 산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2봉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긴 채 하산 길을 재촉한다.

▲ 5월에 핀 대운산 철쭉.

이 곳에서 왼쪽은 대운산1봉과 굴바위로 향하는 등로이고, 오른쪽은 상대마을(3.2㎞)로 내려서는 길목이다. 오른쪽 방향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조금 뒤 등로는 급경사지대로 바뀐다. 조심을 요하는 구간이다. 자칫하면 발목부상을 당할 수 있는 너덜지대가 한동안 계속되는 구간이다.

조심에 또 조심하면서 쉬엄쉬엄 내려오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촘촘히 도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능선 너머로 대운산 정상이 나무사이로 숨바꼭질 하듯 보였다 사라졌다를 거듭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30여분 정도 내려오면 길은 차츰 완만해진다.

조금 뒤 도통골과 내원골로 갈라지는 안부 분기점에 도착한다. 이 능선을 경계로 도통골과 내원골이 갈라지는 것이다. 이정표는 도통골 대피소까지 1.7㎞, 내원암까지 0.6㎞를 가리킨다. 왼쪽 내원골로 접어든다. 계곡은 봄이 무르익어가는 물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인지 겁 없는 다람쥐의 모습도 간간이 목격된다. 계곡을 돌아 내원암 절 마당에 들어선다.

대운산 내원암(內院庵)은 신라시대 대원사의 아홉 암자 중 하나였다. 을축년(1925)에 불이나 전소가 돼 사찰 명맥만 유지하다가 그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1992년 송암스님이 역사를 일으켜 1993년 완공한 것이고 칠성각은 1994년 완공했다.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삼층석탑은 최근의 석탑으로 보인다. 대웅전과 부속 건물도 그리 오래된 느낌은 들지 않는다.

▲ 대운산 내원암

다음은 대원사에 관한 일화 한 소절을 소개한다. 온양읍 운화리 상대(上大)마을의 절터 골에는 옛날 대원사라 하는 큰 절이 있었다.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의하면 남목(南牧)의 열암사(裂菴寺), 연암의 백연암(白蓮庵), 웅촌의 운흥사(雲興寺), 율리의 망해사(望海寺)와 청송사(靑松寺), 언양의 연고사(連高寺), 삼남(三南)의 석수사(石水寺)와 같이 등재 되었던 이름 난 절이다. 그러나 대원사는 정조(正祖) 10년(1786)에 폐사되고 지금은 그 절터만 남아 있다. 대원사의 내력은 절터에 남아있던 현하당(縣河堂)이라 음각된 부도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이 부도에 새겨진 이름을 보아 현하당이라는 스님이 대원사(大原寺)에 있었던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외의 사적(寺蹟)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절이 망하게 된 사연에는 사람의 구전으로 내려온 또다른 전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오를 정도로 크고 이름난 절이었으니 신도들이 많이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절에는 괴이한 주지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드는 것을 몹시 귀찮게 생각하여 왔다는 것이다. 수도승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의 큰 절(통도사나 불국사)처럼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관광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한 도사가 절을 찾아와서 잠시 쉬게 되었다. 이 때 주지의 입에서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와 귀찮으니 사람들이 적게 오게 할 수 없을까 하는 말을 하였다한다. 이 말을 듣게 된 도사는 “그런 일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니 그리 근심치 않아도 될 일이올시다. 마을로 내려가는 산모퉁이에 큰 길을 내게 되면 소원대로 될 것이요”하고 홀연히 떠났다.

▲ 5월에 핀 대운산 철쭉.

도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 주지는 산모퉁이를 헐어 길을 열었다. 그런데 작업 중에 석불 한 구가 솟아 나왔다. 하지만 삽과 괭이에 찍혀 목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졌고, 떨어진 목에서는 피까지 흘러나왔다. 이런 일이 벌어진 뒤 그 절에는 갑작스럽게 빈대가 들끓기 시작했다. 많은 빈대 속에서 사람들은 견딜 수가 었어 쓰레받기에 쓸어 담아 웅덩이에 버렸다. 그 곳을 빈대소라고 한다. 지금도 절터의 바위를 뒤져보면 빈대 껍질이 나올 정도라고 이 곳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내원암에서 조금 내려오면 수령이 500여년이나 되는 팽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이 곳은 온양읍 운화리 1313번지로 그 옛날 대원사라로 불리던 큰 절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팽나무를 둘러본 뒤 최근 새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마당 바위가 있고, 이 바위 맞은편에 아들바위도 있다. 아들바위 위로 돌을 던져 그 돌이 바위 위에 얹힌 뒤 떨어지지 않으면 득남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이 곳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종종 바위에 돌을 던지기도 한다.

▲ 내원암 팽나무.

그 오른쪽 계곡 아래에는 높이가 4~5m쯤 되는 금강폭포도 숨어있다. 폭포수를 뒤로 하고, 곳곳에 핀 철쭉을 감상하며 조용히 시 한 수 읊조려 본다.

▲ 진희영 산악인·중앙농협 달동지점장

‘철쭉꽃 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눈에 눈물이 고인다.//내 너를 가슴에 담지는 못하더라도/내가 입고 간 옷깃이라도/너를 배어오고 싶다.//배낭 깊숙이 꾹꾹 눌러/오래오래 너를 간직하고 싶다.’(진희영 ‘철쭉꽃’ 중에서)

이런 생각을 떠올려보며 S자 형태의 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내려오면 처음 출발지인 갈림길에 도착한다. 곧이어 대운교 부근에 도착되고 상대3공영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오늘 하루 산행을 마감한다.

진희영 산악인·중앙농협 달동지점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