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서의 여행은 잠깐의 여유가 된다. 반복적으로 플레이되는 록 음악 중 한 두곡의 발라드는 휴식이 된다. 복잡한 사회의 이미지 홍수 속에서 여백을 느끼게 하는 회화는 곧 명상이 된다.
이건희의 ‘유영하는 언어’는 작가가 작년 프랑스 씨데 국제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있을 때 제작한 한지작업이다. 어디에 있어도 소통될 수 있는 현시대적 상황을 한지를 통해 해석했다. 작품 화면에 보이는 컬러 색띠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소재는 신문지다. 신문지의 컬러이미지를 가위로 잘라내어 기록된 사건이나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가의 한지작업의 중요한 개념은 기록 매체로서 종이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조형적으로 해석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종이는 더 이상 현대인의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자기계 속에서 유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40×40cm 크기의 모듈을 계속 배열하고 연결하면서 이미지를 구성해 나가는 방식도 이와 같은 의미로서의 표현방식이다.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은 작가가 한지라는 자연과 호흡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여백의 강조를 통해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은 화면에서 담담한 멋을 자아낸다. ‘무릇 공기처럼 담담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라고 한 것처럼. 관객들은 과연 한지작업 앞에 서서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이건희의 ‘채집된 이미지’전은 6월2일까지 울산시 중구 성남동 갤러리 아리오소에서 만날 수 있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