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바쁜 일상에서의 여행은 잠깐의 여유가 된다. 반복적으로 플레이되는 록 음악 중 한 두곡의 발라드는 휴식이 된다. 복잡한 사회의 이미지 홍수 속에서 여백을 느끼게 하는 회화는 곧 명상이 된다.

이건희의 ‘유영하는 언어’는 작가가 작년 프랑스 씨데 국제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있을 때 제작한 한지작업이다. 어디에 있어도 소통될 수 있는 현시대적 상황을 한지를 통해 해석했다. 작품 화면에 보이는 컬러 색띠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소재는 신문지다. 신문지의 컬러이미지를 가위로 잘라내어 기록된 사건이나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가의 한지작업의 중요한 개념은 기록 매체로서 종이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조형적으로 해석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종이는 더 이상 현대인의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자기계 속에서 유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40×40cm 크기의 모듈을 계속 배열하고 연결하면서 이미지를 구성해 나가는 방식도 이와 같은 의미로서의 표현방식이다.

▲ 이건희 ‘유영하는 언어’ 가변설치, 수제 한지 위 혼합재료, 2017년

작업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은 작가가 한지라는 자연과 호흡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여백의 강조를 통해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은 화면에서 담담한 멋을 자아낸다. ‘무릇 공기처럼 담담한 것은 그 의미가 크다’라고 한 것처럼. 관객들은 과연 한지작업 앞에 서서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이건희의 ‘채집된 이미지’전은 6월2일까지 울산시 중구 성남동 갤러리 아리오소에서 만날 수 있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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