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경주문화재연구소...정밀발굴조사 중간결과 발표

▲ A지구 성벽 내에서 출토확인 된 인골.

문화재청 경주문화재연구소
정밀발굴조사 중간결과 발표
월성지역서 인골 2구 출토
의례행위 치른 후 매장한듯
터번 쓴 토우·목간 등 발견
6세기 활발한 국제활동 증명

“1500년 전 신라는 사람을 제물로 묻었다!”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 대한 정밀발굴조사가 진행되던 중 제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출토됐다. 1500년 전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은 국내 성벽 유적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으로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 설화의 일면으로 분석될 수 있다.

또 소그드인(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이란계 주민)으로 보이는 ‘터번을 쓴 토우’와 병오년(丙午年) 간지가 적힌 목간도 함께 발굴됐다. 월성의 사용 시기를 확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6세기 신라의 활발한 국제활동을 증명하고 있다.

16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2015년 3월부터 진행해 온 경주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중간 결과 발표회 겸 현장공개 행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번에 확인된 인골의 얼굴 주변에는 나무껍질이 부분적으로 확인됐다. 똑바로 누운 인골은 키 166㎝의 남성이고, 다른 인골은 이보다 조금 작은 159㎝로 아직 성별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종훈 소장은 “자연 퇴적층에 1.5m 높이로 흙을 쌓은 뒤 사람 두 명을 묻고 다시 9m 높이로 성벽을 축조했다”며 “결박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고 곧게 누운 점으로 미뤄 사망한 뒤에 묻은 것으로 판단되고, 의례 행위를 치르고 나서 매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해지자구 출토 동물유체(곰뼈).

중국에서는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00년께) 시기에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에 충혜왕 4년(1343) 인주 설화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항간에 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토우는 어른 새끼손가락 크기로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머리에 두른 터번 형태가 뚜렷하며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고 있다. 연구소는 “당나라 시대 호복(胡服)이라고 불린 소그드인의 옷과 유사하다”며 “국내에서 나온 소그드인 토우 중 이번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해자지구 출토 목간.

월성 해자에서 새롭게 발굴된 목간 중 글씨를 해독할 수 있는 유물은 모두 7점이다. 그 중 하나인 ‘병오년’(丙午年)은 6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기 때문에 법흥왕13년(526년)이나 진평왕8년(586년)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목간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확인된 ‘병오년’은 586년이 99% 확실하다”며 “이 시기를 즈음해 해자의 성격이 방어용에서 정원용으로 바뀐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소그드인을 추정되는 ‘터번 쓴 토우’.

이외 출토물로는 동물뼈와 식물씨앗, 목제품 등이 있다. 특히 돼지, 소, 말, 개의 뼈가 많이 출토됐는데 곰의 뼈가 함께 나온 점이 특이하다. 곰은 신라 시대 유적에서 최초로 확인된 동물유체로서, 유입과정과 사용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다. 목제유물은 빗, 국자, 목제그릇, 칠기(漆器:옷칠) 등의 생활도구, 나무와 나무를 잇는 건축재료 등이 포함됐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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