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에 장손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는 딸을 계속 낳았고 둘째 며느리인 작은 어머니는아들 쌍둥이를 낳아 나와 한살차이로 한집에서 모여 살았다.  할아버지는 사촌 동생들(아들 쌍둥이)에게는 천자문을 가르치며 나에게는 어깨 너머의 배움도 허락하지 않았다. 여자는 천자문보다 양반집 맏며느리로 키워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밥상은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든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지만 남자들은 상위에서, 여자들은 밥그릇을 상 아래에 내려놓고 먹었으며 며느리들은 부엌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치도 맛있는 부분은 상에 놓여져 남자들의 구미를 돋구었고 여자들은 배추의 꽁지 딱딱한 부분 차지였다. 지금도 김치포기를 썰면서 배추꽁지만 보면 화가 치민다. 그러면서도 버리기가 아까워 모아 두었다가 찌개를 끓여낸 다음에 건져 버리는 것을 보면 길이 들었나 싶기도 하다.  아버지는 다행스럽게도 생각이 달랐다. 남자는 사회생활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므로 여자가 많이 배워야 훌륭한 자녀를 키울 수 있고 그것이 사회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우리 딸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었다.  이렇게 자란 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점점 바뀌어가는 우리사회-여성국회의원이 늘어가고, 여성장관이 임명되고, 특히 여성부가 신설되는 것을 보면서 감개가 무량하다.  1실 3국 1심의관·공보관 3담당관 8과 체제로 총 102명의 인력으로 출범한 여성부는 여성정책 기획과 성폭력 및 가정폭력 방지, 윤락행위 방지, 남녀차별금지, 여성지위향상을 위한 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성폭력방지와 남녀차별 문제에 대한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싶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적나라하게 노출되지 않았을 뿐, 사회각층에 만연되어 있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남녀 차별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단지 여자라는이유 하나만으로 취업에서 업무 분담, 승진, 퇴직까지 모든 직장생활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여성부는 이러한 불합리한 것들을 시정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주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켜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우리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차별받지 않을 만큼 준비되었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제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향유할 능력이 없다면 그림의 떡이아니겠는가.  우선 "여성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여성이니까"라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처럼 행동해서도 안된다. 삶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며 그 목표를 향한 행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가치가 많은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다. 사회생활의 경험이 적은 여성들은 그것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여성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행동은 이성적이고 조화로워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마음은 따뜻하고 너그러워서 어려운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규범을 준수하고 상부상조하는 사회적 인식도 돼 있어야 한다. 품위와 능력,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만이 여성파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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