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단위 지휘체계·시스템 구축
매뉴얼 통한 체계적·주기적 훈련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 이병희 울산동구보건소장

최근 몇년간 날씨가 더워지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3년전 바다에서의 사고, 2년전 병원을 쓸고 간 메르스. 보건의료인의 입장에서 두 사고 다 인명의 문제였기에 더욱 와 닿고 상처로 남아있다.

해외 유입 신종 전염병 메르스에 처참하게 무너진 대한민국의 위상,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공중보건은 무엇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최근 콩고 지역에서 발생한 ‘에볼라’ 소식에 문득 메르스 이후를 뒤돌아보고 복기를 통해 앞으로 또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경험을 교훈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 점검할 시점이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 경험 부족, 그러므로 그 사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 당시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 환자의 수는 1000명이 좀 넘는 수준으로 이 질병에 대한 역학적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더구나 이 질병의 90% 이상이 사우디 아라비아나 인근 국가에서 발생했고, 그 나라들이 질병자료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바 메르스에 대한 정보는 매우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메르스 이전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2년 겨울 ‘사스’라는 신종 전염병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다. 바로 이웃나라의 발병 소식을 듣고 즉각적으로 거국적인 예방 조처를 전략적으로 실행, 전국 보건소, 검역소, 중앙 정부가 유기적인 협조 체계를 가동해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한해 8000여 명이 감염돼 770여명이 사망했으나 우리나라는 유입환자 3명에 그쳐 WH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를 받았다.

우등생이 하루아침에 낙제생이 되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사스 유행시 헌신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공무원들이 일제히 다 퇴직 했을리도 없는데 말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업무란 특히 재난이나 안전 관련 업무라면 더욱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도자 한사람, 능력있는 개인이 하는 것을 넘어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 위기 대응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고 그에 따른 체계적인 훈련과 대책 마련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지속적으로 전세계적 동향을 모니터링 해야한다.

10년 동안 우리는 제2, 제3의 사스나 그 이상의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방심하고 최소한의 시스템조차 녹슬게 하지는 않았는지. 보건이나 의료의 공공성과 특수성이 경영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그 역할이나 자원이 위협받고 위축된 것도 문제의 한 축이 된 것은 아닌지. 뿐만 아니라 위기 소통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메르스 사태를 지나며 뼈아프게 경험했다. 소통을 거부 혹은 외면했던 정부와 그로 인해 싹튼 불신이 괴담으로 번지고 그에대해 엄벌로 맞서겠다는 행정부였다. 그렇게 참담했던 메르스와의 전쟁을 교훈삼아 지금 우리는 의식과 시스템 변화를 꾀해야 한다.

메르스 당시 지역 공중보건을 담당했던 경험을 되살리며 몇가지 의견을 제시해본다. 정부 최고위층은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감염병 전문가와 공중보건 전문가의 역할을 이해하고 전문 영역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중앙 단위의 지휘체계와 시스템을 구축해 놓아야 한다. 의사 면허와 의사라는 직종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세분화된 전문화가 있고 그에따른 차이가 무엇인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질병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관리하는 것의 차이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또 지역단위 현장에서의 지휘체계와 조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메르스 이후 현장에서의 문제점에 누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들어 주었을까?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각 시도별 한명의 역학 조사관이 고작이었다. 이제 시스템을 들여다보고 정비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위기상황 대비와 대응에서 인적 물적 기본역량 부족과 공공의료기관의 인프라 부족의 문제를 풀어 나갈 방안을 새로운 정부에서는 관심을 갖고 고민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끝으로 괴담이라는 말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도록 중앙이든 지방이든 행정 조직에서는 대중들의 신뢰를 쌓아야하고, 이는 빠르고 바른 위기 소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직이나 기업의 보호를 국민 대중의 안위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대중의 목소리, 말단 행정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새 정부를 기대해본다.

이병희 울산동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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