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후략-

▲ 엄계옥 시인

총 12연으로 나뉜 서사시다. 아쉽지만 후략이 더 길다. 각 연마다 조국애가 끓어 넘친다. 가끔 친일작가의 작품을 대할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문인은 글이라는 ‘썩지 않는 기질을 갖고 태어났는데도 무슨 연유로 이를 버리고 반드시 썩을 것만을 구하는가.’(청나라의 시인, 원매의 말) 썩지 않는 기질을 썩게 만든 것이 오히려 글이라니. 이 시는 6.25가 배경이다. 스물 다섯 살 청년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자 절절한 심정으로 시인의 손을 빌어 나라를 당부 하는 내용이다. 시인은 신과 인간의 매개체라서 때로는 죽은 자로 빙의하기도 한다. 이토록 애국이 깊어 보이건만, 친일이라니! 글이란 맑은 혼에서 길러진다. 썩지 않을 혼이라면 호국영령을 따를 자가 없다. 호국영령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까닭이다. 대대손손 썩지 않을 혼령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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